그르지아사태와 미,쏘의 대결
그르지아사태와 미,쏘의 대결
  • 이 달 순 kmaeil
  • 승인 2008.09.03 2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르지아 사태가 심각하다. 미,쏘의 대결이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그르지아라는 나라는 9세기에 세워진 나라로 인종은 카프카즈계의 민족이나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동방정교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그로지아국민은 600만이지만 80%가 러시아국적이며 러시아선거권 사용중이다. 화폐 역시 루불화로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르지아는 영명이고 그르지아인들을 자신들의 나라를 사카르트빌로라고 부르고 있다. 12세기 다비드 1세때 왕국의 기초가 세워졌으나 1220년에는 몽골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그후 일칸국과 킵차크칸국 그리고 티므르와 백양왕조의 지배를 거쳐 1618년에 페르시아의 사파비왕조의 침공을 받아 무참하게 황폐화되고 기도교사원은 모두 파괴되었다. 그러나 기오르기 사카제라는 유능한 장군이 나타나 한때 페르시아군을 격멸하기도 하였으니 여왕 카데반이 포로가 되어 처형당하여 그루지아왕국은 다섯공국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스만제국까지 그르지야에 침공하여 당시 그르지아의 국력으로는 오스만제국을 상대할 수가 없었고 1683년 그르지아는 사실상 분열되고 전통 군제제도 붕괴되어 오스만제국과 페르시아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나로 그쳤다. 결국 러시아가 1801년 그르지아의 공국들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빼앗고 지배하여 러시아의 지배가 시작 되었고 1991년까지 러시아와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다. 1991년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독립하였으나 독립당시 내전 소요사태 등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11개중 2곳이 자치공화국으로 요구되었다. 현재는 9개주 9개시 2개 자치공화국으로 구성되고 수도는 서로 다르다. 그르지아, 압하즈와, 남아세티아등 두 개의 자치공화국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화국이 아니라 자치공화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종족구성이 그르지아인(83.8%), 아르에니아인(5.7%), 아제르바이아인(6.5%), 기타(2.5%)등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세오티아와 압하지와는 사실상 독립국가지역이다. 그러나 그르지아는 그 곳이 그들의 국가영통이기 때문에 자치지로 그 뜻을 격하시키며 그르지아는 국가로 존재해 왔는데 러시아가 남세오티아를 지원 그르지아를 압박하고 있었다. 지난 8월5일 베이징올림픽이 개막되는 날 온 지구촌의 관심이 올림픽에 쏠려있다는 것을 노린것인지 그르지아는 남오세티아에 대한 통치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하여 대량공격을 퍼부었다. 적어도 15명의 시민들이 사망하고 여러명의 시민들이 다쳤다. 9일 마하일 사카슈빌리 그르지아대통령은 정식 전쟁선포 하였고 러시아는 이에 대응하여 보복을 다짐하였다. 이번 전쟁은 단시일내에 휴전에 들어갔지만 그르지야편인 미국과 남오세티야를 지원해온 러시아간 대리전이라는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미국의 MDD계획으로 양국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향후 양국 개선에 또하나의 걸림돌이 될것으로 보인다. 영토통합을 명분으로 남오세티야를 공격한 그르지아도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지만 타국의 내전에 간섭한 러시아 역시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일간지 타임스는 21일 “그르지아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중동에서 구소련 동맹국들을 규합해 반서방전선을 형성하는 신냉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러시아가 그르지아전쟁을 계기로 냉전시대의 개념인 영향권을 회복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분명히 했다. 그리고 NATO의 휴전권유도 러시아는 거부했다. 그르지아전쟁으로 전개된 미,소의 대결로 이루어진 신냉전의 전망이 궁금하다.
이 달 순
이 달 순
kmaei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