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현장에서 -님웨일즈와 김산의 아리랑
역사 속 현장에서 -님웨일즈와 김산의 아리랑
  • 이달순 수원대 명예교수 kmaeil@
  • 승인 2008.09.23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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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전 1938년 9월 김산은 “트로츠키주의자” 혹은 “일본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바오안 법정의 책임자였던 캉성의 지시에 따라 처형되었다. 김산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941년 님 웨일즈가 “아리랑”이란 책을 미국에서 출간하면서 부터였다. 님 웨일즈는 그녀의 남편 에드가 스노우가 그녀에게 붙여준 필명이었다. 그 이름은 그녀의 조상이 웨일즈 태생임을 뜻하는 것으로 그녀는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녀는 1907년 미주서부 유타주에서 변호사의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헬렌포스터 스노우이다. 그는 성장하면서 신문기자, 시인이며 계보학자로 활동했다. 그녀는 여러 권의 저서를 냈으며 오랜기간을, 격변하는 아시아에서 보내며 중국과 한국에 관하여 많은 글을 집필하였다. 마오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한 그와 함께 1930~40년대를 중국을 누비며 마오찌둥의 대장정에 참가하였다. 그녀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 오르기도 했다. 님 웨일즈가 1937년 중국의 연안에서 중국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바친 “김산”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는 이 만남의 성과를 담아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를 출간한 것이다. 그의 본명은 장지락이다. 평북 용천 출생이다.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동 연안 등을 누비며 항일투쟁을 한 것이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가 이동휘, 안창호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1925년 중국공산혁명에 참가하였다. 1930년과 1935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그가 혐의없이 석방된 것이 빌미가 되어 1938년 중국공산당에 의해 일제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 되었다. 그 뒤 1983년 중국공산당은 그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키는 복권을 결의 하였다. 200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북한에서는 김산을 “열사”로 우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김산을 혁명투사로 떠받들어 주고 있다. 우리나라 보훈훈장은 공산당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더라도 북한정권에 가담하지 않은 선조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도록 되어있기에 훈장을 추서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행적 또한 공산주의이론에 심취하기보다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나 그는 무정부자의자이자 테러로 행동하는 투사였던 것이다. 훈장은 그의 아들이 북경에서 와 받았고 더욱이 금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때 이명박 대통령이 입장하면서 오른편엔 서재필의 외손자 왼편에는 장지락의 아들이 나란히 입장한 것이다. 이 뉴스가 크게 보도 되지 않았다. 이제 뜻있는 분들이 나서 김산 아카데미를 창설, 그의 추모사업으로 세미나, 강연회, 학술지 등을 창간할 예정이라 하고 영화도 제작하리라고 한다. 아마도 영화가 완성되면 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도 대성황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대륙은 죽음을 마다하고 누빈 김산의 생애를, 나약하게 키우고 있는 우리나라 부모에게 들려주어 청소년 인성교육에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의 영웅적인 불굴의 투지와 개척하는 용맹성을 상징하는 김산 영웅상도 마련하고 있다니 우리모두 호응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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