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울진 산불과 식목일
[덕암 칼럼] 울진 산불과 식목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4.05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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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식목일 하루 전날인 지난 4일 저녁 경기도 하남시 위례신도시 근처인 청량산에 서 산불이 발생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까지 위협받았다.

다행히 밤늦도록 번진 불길이 겨우 잡혔지만 한때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피령까지 내려져 불안한 상황은 여전했다.

이렇듯 불은 소재, 산소, 발화점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가리지 않고 악마 같은 화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인간사회 유지에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던가.

지금으로부터 한 달전, 3월 4일 오전 11시 17분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은 발생 6시간 만에 한울 원자력발전소를 향했지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강원도 삼척으로 번졌다.

처음 발생한 울진지역은 금강송 보호를 위해 10일간 821대의 헬기가 동원되었지만 삼척지역은 1대만이 겨우 다닐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드러냈다.

산불이라는 게 시도때도 없이 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유사시 진화가 목적이라면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이미 타버린 1만 8,463ha의 면적은 서울 전체 크기의 3분의 1만큼이나 넓었다. 불이 날때 화재로 피해를 본 이재민을 돕자고 피해구호성금 모금은 물론 특별재난지역 선포와 대선후보들까지 너도나도 찾은 곳이었지만 잠시 소란스러울뿐 불이 꺼지면 관심도 꺼지듯 조용해졌다.

만약 서울이나 경기도 일원에서 유사한 면적의 산불이 발생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국가적 재난에 엄청난 이재민은 물론 진화후 최소한 몇 달간은 뉴스 소재로 국물이 멀겋도록 재탕을 거듭했을 것이다.

화마가 할퀴고 간 화재현장은 처참했다. 시커멓게 탄 나무와 겨울 산의 특성상 말라버린 잡풀은 삽시간의 불이 번질 수 있는 인화성 도구로 돌변했다.

자연 생태계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나 동·식물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천년바위라면 몰라도 하루 아침에 서식처를 잃어버리거나 위기를 모면했다 하더라도 산불에 휩쓸려 먹이사슬이 무너진 자연은 그 무엇으로도 회복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발생 일자가 3월 4일이고 다음날 3월 5일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입을 연다는 경칩이었다.

땅속에서 동면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자마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사람 손에 키워지던 가축도 가릴 것 없이 희생되었지만 자연에 기대어 공존하던 야생 동·식물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산양 서식지도 사라지고 겨우내 움츠렸다가 싹틔우려는 모든 식물들도 시뻘건 불길에 한줌의 재가 됐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연소재가 될만한 곳이면 쫓아가서 태워버리는 악마였다. 눈알을 두리번 거리다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불씨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살아 숨쉬는 모든 건 다 태워버리겠다는 저승사자였다. 원인을 찾고 보니 이웃 주민이 자신을 무시해 방화했다는 방화범의 진술이 확보됐다.

휴대용 가스 토치로 붙인 불은 강풍을 타고 불이 불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강원지역 산불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었다. 한번씩 산불로 뉴스를 장식할 때마다 그 때 뿐이었다.

옛날 말에 ‘싸움구경, 물 구경, 불구경은 돈 주고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자연재해의 우연함은 가공될 수 없는 것이기에 눈요기 거리에 충분한 소재가 될 수 있으나 정작 사람을 비롯한 모든 자연에 포함된 피해환경의 입장에서는 사느냐 죽느냐로 구분되는 심각한 문제다.

이미 타버린 화재현장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 대안을 세워야 할까. 잿더미 속에서 다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려면 미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다.

나무를 심은들, 진화용 헬기를 더 구입한들, 산불 예방 대원들을 증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겨우내 잠자던 곤충들까지 다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재생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어제는 1910년 순종이 친경제때 친히 나무를 심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가 1949년 4월 5일 법정 기념일로 정한 ‘제73회 식목일’이었다.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1년의 계획은 새해 첫날 세우지만 10년은 나무를 심고 100년은 인재를 양성하는 계획을 세운다는 게 정설이다.

독자 분들은 자금까지 몇 그루의 나무를 심었을까. 지역발전을 추구하고 시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은 오늘 같은 날 나무심기에 앞장서는 모습이 요원한 날이다.

보여주기 식의 행사용 식목 말고 자연과 더불어 십년쯤 지난 뒤에 다 자란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할 수 있는 식재, 20년쯤 지난 뒤에 자신이 심은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어 햇볕도 가리고 에세이집 한 권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비록 사는 게 바빠서 함께 있지 못해도 말없이 자라준 나무가 고맙지 않을까.

비단 식목일만 심을 게 아니라 평소에도 봄이면 채소씨앗을 파종하듯 멀리보고 한 그루의 묘목이라도 심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아이들이 배울 것이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같은 감동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며 그렇게 국토는 푸르러질 것이다.

누가 방화를 했든 타버린 면적 두 배는 심어야 재가 되어버린 자연에게 덜 미안한 인류가 될 것이다.

기왕이면 울창한 숲을 예상하며 모든 동·식물이 어우러지는 수종을 선택하여 적어도 20년쯤 뒤에 알프스나 록키산맥을 보는 듯한 멋진 풍경을 그려보자.

훗날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감동과 탄성으로 자연을 아끼는 선조들의 지혜를 물려주었으면 한다.

어제는 필자가 지난 수년 동안 식목일이면 지인들을 모아 이곳저곳에 심었던 나무들을 살펴보았다. 1m도 안 되던 묘목들이 제법 자라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했다.

오늘 4월 6일, 24절기중 하나인 ‘한식날’이다. 설날·단오·추석을 포함 우리민족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4대 명절 중 하루다.

더운 음식보다 찬 음식을 먹는다는 뜻에서 정해진 한식, 조상의 묘에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던 풍습에 따라 입산객이 늘고 영농철이 다가오는 가운데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심스러운 시기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다. 주인인 것처럼 자아도취에 오만할 게 아니라 함께 아끼고 가꾸는 것이 예의이자 공존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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