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당쟁 그리고 숙정과 정쟁
사회와 당쟁 그리고 숙정과 정쟁
  • 경인매일 kmaeil
  • 승인 2009.01.0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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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 명예교수 ·계명고등학교장 이 달 순
고려시대의 공직자는 봉건사회의 만다린(mandarin) 이었다. 그러나 유교가 정치종교로 등장하여 고려의 불교를 억압하고 조선왕조를 세우면서 유교를 일으켜 관인국가의 확립을 도모했다. 유림이라고 일컫는 선비들은 유학을 공부해서 벼슬길에 올랐다. 이들은 조선왕조의 전제군주정치를 주도하는 관리(Bureaucracy)가 되었다. 이들 선비는 유학을 익힌 지식인 인것이다. 맹자는(智)를 시비지심 이라고 했다. 선비들은 비판정신이 강하다. 비판적 지식인을 우리는 이테리겐차(Intelligentsia) 라고 한다. 더욱이 정도전은 새왕조의 정치체제는 선비들에 의하여 주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비들은 왕권을 비판하고 도전했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저항하는 선비들을 처단하여 이것이 곧 사화가 나타나기에 이른 것이다. 선비는 군주에 의하여 처단되었지만 선조때에 이르면 당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의 선비들은 이른바 사회의 지도층이고 권력을 쥐고 있는 엘리트(elite)들 인것이다. 이미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선비들은 중앙과 지방에 걸쳐 인적, 물적인 기반을 가진 세력끼리의 싸움이였던 것이다. 당쟁은 오늘날 정당의 구성요건인 공공성, 의견단체, 정권투쟁, 전국적 지배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당시 당쟁은 유교적 교리에 입각하여 순수성을 추구하는 싸움이었다. 시비선악의 규명이 엄격했다. 부정과 비리는 용서되지 않았다. 당쟁을 통하여 나라의 모든 결점이 표현 발표로 되었다. 그리고 백성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를 문제로 했다. 다못 순수성추구는 융합의 기가 없었다. 그러나 백중하는 두세력이 싸울때 각기 상대방의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했음으로 부정부패가 견제되었고 정치권은 시끄러워졌지만 백성은 편안했다. 더욱이 조선왕조의 사화는 군주에게 목숨을 바쳐 “왕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백성을 위하여 아니 되는 일입니다” 하다 처단을 받은 것인데 이지음 정치인들은 비리와 부패로 형벌을 받으며 숙정되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정권이 교체 될 때 마다 전 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가니 말이다. 12.12의 동지인 노태우대통령이 그의 은인격인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야만 하는 경우라든지 그의 동생 전경환 을 감옥에 넣는등 전 정권의 비리를 터드려 숙정하곤 하는 것이다. 노태우대통령도 김영삼정권 에 의해서 둘이서 감옥을 가고 그당시의 실세들인 하나회가 묵사발이 되기도 했다.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은 각기 그의 아들들을 감옥에 보냈으며 그들의 최고 측근들도 모두 감옥에 갔다. 요즈음 국회의 정쟁은 전쟁터라 하겠다. 정책대결 아닌 이념대결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념의 시대는 지났는데도 우리의 정치권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지나치게 심각하다. 좌파던 우파던 나라를 위하는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지나치게 권력에 집중하면 안된다. 더욱이 권력에 집중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명예따르는 정당정치이기 때문이다. 중간시민 계층을 위해서 잘했던 일은 보강하는 아량이 있어야 하고 잘못을 고치는데 조급하게 하다가 실패한 정권의 실태를 파악 서서히 신중하게 중간시민계층을 위한 정책을 채택하여야 한다. 북한과의 문제는 줄 것 주고 말할 것 말하는 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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