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職者의 도덕성
公職者의 도덕성
  • 김명준 논설위원 kmj@
  • 승인 2009.07.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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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청문회를 도입한지 얼마가 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단순히 전문직이나 기능직을 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다. 이 부름에 응하는 사람은 소명감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공직은 성직(聖職)이다. 이러한 거룩한 부름에 응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지속적으로 갈고 닦아야 할 희생적 각오를 해야 한다. 정치인이나 공직은 화려한 직업이 아니다. 이러한 수신(修身)의 과이없이는 공직을 맡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과 같이 고도로 기능화된 사회에서 정치인이나 공직자를 뽑을때 그 개인의 사생활의 윤리성을 철저히 다룬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최근 미국의 고위 공직자 즉 대법원 판사나 장관급의 인사를 임명할 때 의회에서 그 자격심사를 위한 청문회를 할 때 그 당사자들의 능력이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인준이 거부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가장 많이 문제를 삼는 것이 당사자 개인이나 가족생활의 준법성과 윤리성이고 그 다음이 당사자의 정치적 견해이다. 그 이유는 첫째, 그만한 자리에 임명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전문 지식이나 능력은 이미 인정이된 것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 당사자의 개인과 가정생활에서 보여지는 그 당사자의 모습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공직자가 될 수 있는지 어떠한 준법정신과 윤리의식, 그리고 국가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유교에서 보면 사서(四書)의 하나로 꼽히는 대학(大學)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오한 비전을 펼치고 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내적성장 그리고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로 연결되는 인간자아의 외적확장은 인간의 개인적 자아적 사회적 자아,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연결 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유교적 인간관은 인간의 개인적인 자아와 사회적 자아를 둘로 분리시키지 않고 지속적 연장으로 본다.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을 근본적으로 하나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적인 삶과 공적인 기능을 분리하지 않는다. 유교에서 말하는 개인이나 개인주의라는 것은 서구사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교적 사고는 개인과 집단의 이분법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수신(修身) 이라는 것은 자기개인의 사생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수신의 과정 그 자체가 가정과 국가와 세계까지도 연결되는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일부 상층 집단이 갖는 도덕적 불감증은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민적 졸부문화야 말로 일부 상층 집단의 일그러진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혹이든 진실이든 일반 국민의 눈에는 지난 정권때 두 총리 자격 검증이라기보다 오히려 한국 상층 집단의 청문회로 비쳤을 가능성도 없지않다. 상층 집단이라 해서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물론 옳은 처사가 아니다. 그러나 그 부(富)와 명예가 정당한 방법을 통해 획득된 것이 아니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서민들이 받아온 경제적 고통을 생각할 때 일부 상층 집단의 도덕적 불감증에 대해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서 분노와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전 정권은 정권 초기부터 노 대통령의 최 측근들의 비리로 공직사회 기강이 말이 아니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리와 연류되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봉화마을에서 투신자살 했다. 정의(正義)가 강물처럼 흐르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 보다 추상같은 법(法) 집행이 전제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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