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성 칼럼] “답게” 살자
[구갑성 칼럼] “답게” 살자
  • 구갑성 논설위원 kmaeil86@kmaeil.com
  • 승인 2022.12.01 14:2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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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섭 논설위원
▲구갑성 논설위원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공자(孔子, BC 551~BC 479)는 《논어(論語)》에서, 정치를 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제자 자로(子路)의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 正名乎]'고 하였다.

여기에서 '정명(正名)' 정신이 유래하였으며, 이것은 대상의 이름과 그 본질이 서로 부합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즉, 사회 구성원이 한 사회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이나 사명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를 제대로 수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君君], 신하는 신하답고[臣臣],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父父],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子子]'라고 하였다. 정치에서 벗어나 우리 삶 속에서도 공자의 정명정신은 분명 의미가 있다.

사회가 부패하고 부도덕이 만연하게 된 것은 각각의 사회 구성원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인간 사회의 무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정명정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함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킨 맹자(孟子, BC 372?~BC 289?)는 정명정신을 바탕으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할 때 혁명을 통해 임금도 내쫓을 수 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우리 사회의 촛불혁명이 바로 자신의 위치에서 특히나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 분명하게 해야 하는 지도자가 제 역할을 못했을 때 국민의 의해 자기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지도자를 작은 힘들이 모여 끌어내리는 큰 힘을 보여주는 예들이 많다. 정명하지 못한 군주는 군주라도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끌어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동양의 정명사상은 서양철학에서는 칸트에게서 발견된다. 칸트(I. Kant)는 의지가 정언 명령에 따르는 자율적 의지를 ‘자유 의지’라 했다.

반면, 감성적 의지가 자연 욕망에 따르는 것을 ‘타율’이라 불렀다. 즉 자기역할을 스스로 하는 자유 의지라 말로 정명과 닿아 있다. 제 역할을 스스로 하고 다른 것에 간섭받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제대로 해내는 것, 서양과 동양의 사상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런 2500년 전 공자가 논어를 통해 주창한 정명사상이 더욱 필요로 하는 곳 중 하나가 교육의 산실인 대학이다.

최근, 대학은 압박당하고 있다. 주요 사립대학 감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측면의 고등교육정책은 전통적 대학이 누려왔던 자율성을 없애고 대학다움을 억누르고 있다. ‘대학의 정명’은 ‘대학’이라는 명칭이 그 ‘실제에 맞게 바로 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대학은 정명을 확립하는 작업부터 자율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공자(孔子)가 고민한 정명은 너무나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윤리적 차원에서 볼 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이를 대학 구성원에 빗대어보면, ‘대학의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하고, 직원은 직원다워야 하며, 교수는 교수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 자율을 신성하게 여기던 관점으로 볼 때, 대학이 대학답지 못한 것은 ‘자율’의 상실 때문이다.

대학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지도자답고, 교직원, 학생 모두가 자신의 이름에 맞게 활동한다면, 문제의 소지는 상당히 줄어든다. 명칭과 실제의 불일치가 대학 자율을 해치는 최대의 적이다. 자율을 해치는 요소가 외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면, 그에 반항하거나 저항해야 한다.

반드시 항거를 통해 외압을 물리쳐야 한다. 고등교육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한 그것은 대학 자율과 정명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이자 최대한의 책무성이다. 명칭에 맞는 실제의 회복! 그것이야말로 대학 자율의 진정한 재생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한 일부인 대학에서 이러한 정명함이 제대로 선다면 이것은 우리 사회 전반으로 뻗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명은 가장 작게는 한 개개인에게 전하는 인간이 가져야 할 품성과 덕목을 지칭하는 학문적 학설이다. 즉, 그의 이름이나 직명에 합당한 역할과 행위 행실이 실천돼야 한다는 도덕적 윤리적 인간상을 훈육지침으로 한 변(辯)인 것입니다.

사람(백성)을 이끌어 다스리는 왕(임금),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궁중 조정신하나 지방 고을의 관료들을 포함한 벼슬아치와 선비는 물론 상인과 평민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개개 인간이 가져야 할 예지(叡智)의 기본골격이 되는 정신과 역할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입지나 위상에 걸맞게 제 역할과 행위 행실을 실천하고 실행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다각적이며 다질적인 인간들의 모둠살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생활 자체나 품성, 성격이 다양하고 다변하기에 이를 지켜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행해야 한다.

소신 있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삶의 과정 과정들이 더욱 힘겹고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거칠어지고 요란해지며 조용할 날이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정명(正名)을 실천하고 실현하기가 이 같은 현대문명 사회에서는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진화해나갈수록 고전에 바탕을 둔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학설이기에 학문적인 가치는 높으나 실현하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의 파급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다. 부조리와 비리에 얼룩지고 불의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다변적이며 시끌벅적하고 뒤숭숭하여 처세와 처신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번 10.29사고만 보더라도 복잡한 메카니즘 속에서 제 자리에서 제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자를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누군가 자기 자리에 어울리는 ‘다운’을 실천했다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고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늦었지만 국민 각자가, 특히 큰 책임을 갖는 지도층들은 정명을 실천하고 실현해야 한다.

온 국민들 하나하나가 각기 국민다운 행동과 역할과 행실을 실현해나갈 때 국가사회질서가 바로 설 것이며 준법 기강이 바르게 확립될 것이며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국민들의 삶이 안전해지리라 생각한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당신과 나의 역할과 사명과 소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며 고민해봅시다.

과연 나는 내가 지닌 이름과 직함대로, 부여된 정명대로 살아가고 있는지요?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름과 위상에 걸맞게 할 일을 하고 있는가? 각자가 각자의 정명대로 역할과 사명을 다해나갈 때 우리 사회는 화합과 상생이 저절로 이뤄질 것이며 반목과 질시는 사라질 것이다.

도덕 윤리에서 비롯된 정명의 행동실천은 온갖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게 할 것이며 반칙과 변칙, 범법과 탈법이 없는 바른 사회로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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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주 2022-12-03 21:48:38
맞는 말씀입니다. 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다운 것인지 깊게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가령 시민답기 위해서는 무엇이 시민다운 일인지 숙고해야 하겠지요. 그러한 고민과 실천이 이 세상을 바로세우는 토대가 될 것이기에 공자는 정치를 한다고 하면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을 먼저 하겠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삶이 힘겨울수록 사람들은 또한 인간다움, 국민다움을 잃기 쉬워 보입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의인이야말로 배척당하기 마련이지요. 오히려 그런 사회일수록 외부의 강압에 항거하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정의이며 용기임을 저는 역사가 증명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군부독재가 살벌하던 시기 나라를 사랑하는 이들의 순결한 희생으로 이 나라에 살아가고 있는 한 국민으로서, 저의 국민다움을 고민해보게 됩니다.

부기 2022-12-02 23:35:31
정말 모두가 ~답게 산다면 사회가 바르게 나아갈 것 같아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