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오늘은 까치 설날, 내일은 우리 설날
[덕암칼럼] 오늘은 까치 설날, 내일은 우리 설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1.20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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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그렇다. 1월 20일 명절을 하루 앞둔 오늘은 까치 설날이다. 절기상 대한이기도 하고 민족 대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들뜬 분위기가 만연하다. 집집마다 곱게 차려입을 설빔을 꺼내놓고 손질하는 풍경과 동네마다 떡집의 시루에 허연 김이 자욱한 모습은 설날을 더욱 실감케 한다.

미리 예약한 열차와 항공, 선박의 운항은 다행히 일기가 고른 편에 별 차질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너나 할 것 없이 부모님과 친척들이 화기애애한 만남으로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눌 것이고, 아이들끼리도 사촌 간, 고종, 이종 간, 심지어 6촌 간 처음 본 얼굴이지만 이내 친해지는 건 혈육에 대한 자연스러운 끌림이 아닐까.

얼핏 보면 형식적인 인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부모님에게 전달하는 선물 보따리는 다시 상경할 때 몇 배의 농산물 보따리로 다시 챙겨가는 물물교환의 일환이다. 부모는 농약 안 친 거라 보기는 흉해도 애써 농사지었음을 말하지만 보기좋고 습관된 쇼핑문화에 젖은 자식 입장에서는 어차피 고속도로 휴게실 분리수거함에 버려질 수도 있을 농산물이다.

고추 한 보따리에 된장, 고추장 챙겨주는 부모의 심정은 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안달이고 이내 손자·손녀들의 재롱에 꼬불쳐 둔 쌈짓돈 마저 탈탈 털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궁상 떨며 살아본들 꿰차고 있는 토지문서를 유산으로 주지 않아야 그나마 명절날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늙어 주름진 얼굴에 기력도 없고 여차하면 요양병원으로 옮길지 모르는 부모님을 찾는 건 사람의 기본이고 인간의 윤리, 즉 인륜의 근본이다. 올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모든 국민들이 고향을 찾는 인륜의 도리를 행하기를 기대한다. 올해도 거리두기 어쩌고 하며 부모님을 외면하고 관광지로 이동할 것인가.

지난 2020년부터 3년간 고향 안 가기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얼핏 보면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무슨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부모님께만 옮기고 관광지에는 아무리 인파가 넘쳐도 괜찮은 것일까. 2021년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정치인들이 고향 안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현수막으로 내걸었고 부모님이 한 것처럼 “얘들아, 오지 마라”라는 현수막이나 방송 캠페인까지 벌인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이런 짐승만도 못한 행태에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었다. 문제는 가지 말란다고 안 가는 자식이 더 잘못된 것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정부 방침을 잘 따라 주었다고 보란 듯이 관광지로 발길을 돌렸던가. 필자가 한 마디 더했다. 지금 이 꼴을 자식들이 보고 배울 것이며 잘 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할까 말까인데 이러니 뭘 보고 배울 것이냐며 안타까움을 표한 적이 있다.

이제 핵가족에 친척이 사라지고 나면 명절은 있어도 모일 일이 없으며 차례는 지내도 함께 절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 고유의 정신적 가치관도 함께 실종될 것이며 위·아래도 없고 오직 돈과 권력과 힘 있는 자와 아첨하고 간신처럼 꾀가 많은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며 정직한 바보와 성실한 미련퉁이는 얼마나 어리석게 살고 있는지 자각하는 날이 올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조차 구분 못 하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 살아만 있는 세상이다. 제아무리 우겨도 이제 10년만 있으면 오늘 같은 설날 민족 대이동이란 단어조차 사라질 것이며 자율주행으로 졸음운전이란 단어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올해는 그동안 못 갔던 고향, 꼭 가보고 전화로 때우던 안부, 큰절하고 용돈까지 챙겨드리는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늙은 부모도 돈 싫어하지 않는다. 연한 고기, 좋은 옷 입으실 줄 알고 싫어하지 않는다. 한번 입혀드리고 먹여드려 보지도 않고 단정 짓는 건 마음이 없어서다. 비단 자식들에게 보여줘서 다음 세대에 돌려받으려고 쇼를 하라는 게 아니다. 다음 세대는 명절의 의미도 가치도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안다 해도 생산성 없이 무의미한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그중에서 가장 큰 손실은 함께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 없다는 것을 실감케했다는 점이다. 학교, 직장, 단체, 모든 모임은 물론 부모를 찾아가지 않아도 별문제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게 생활에 만연하여도 미안하거나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오늘은 코로나19가 국내에 처음 상륙한 날이다. 2019년 12월의 중국에서 첫 사례가 보고 된 이래 2020년 1월 20일 중국에서 입국한 한 여성이 첫 출발이었다. 2020년 2월 20일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래 공식 사망자만 3만 명을 넘어섰다. 중증 환자와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했지만 포함되지 않은 인원을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한국에 상륙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3년간 많은 것을 침몰시켰다. 반면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1953년 7월 27일 휴전된 6·25 전쟁도 같은 기간인 3년이었다. 후자는 북한군 인명피해를 빼고도 한국군 13만 명 민간인 25만 명이 사망했다. 6·25 전쟁이 물질적 폐허를 남겼다면 코로나19는 정신적 폐허로 만들었다.

6·25전쟁은 끝났으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언제 어떤 식의 변이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지 모르니 희생의 끝이 아니라 출발임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적 확산 현상인 펜데믹을 넘어 4년차 접어드는 현재 풍토병으로 고착되는 엔데믹으로 전환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제아무리 무서운 역병이 돌아도 어떤 식으로든 지나간다. 하지만 무너진 인륜이 패륜이 되면 복구할 수 없다. 설령 복구한다 해도 한번 지나간 시간까지 돌이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행복해야 할 명절날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은 매우 아프지만 지나간 날들보다 남은 날들이 더 많다는 평균수명이 모두에게 적용되기를 바라서다.

혹여 그 평균 수명을 다하지 못 하고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할 어려운 계층이 있다면 이 또한 헤쳐 나갈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함이다. 떡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 평소 홀로 사는 이웃집의 문을 두드리는 명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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