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말장난은 위험한 미래
[덕암칼럼] 말장난은 위험한 미래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2.2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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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점심식사 맛있게 드세요”하면 아재가 된다. “맛점하세요”라고 해야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색하지 않다.

한창 호기심과 유행어에 민감한 학생들의 말 줄임이나 변형적 단어를 사회지도층인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여과 없이 흉내 내면서 이제 단어의 혼용을 상업적 제품명이나 간판 상호에도 버젓이 사용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졌다.

심지어 비속어와 욕설까지 뒤섞어 거침없이 사용하는 학생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장차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여기에 유행처럼 영어와 한국어를 혼합하면 세대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60대 이후 노인층의 언어는 일본어가 섞여 있고 신세대는 영어가 주를 이룬다. 같은 내용이라도 재치나 해학이라고 하면 촌티가 나고 유머나 개그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 당구장이나 건설현장, 또는 제조업에서는 여전히 일본어가 통용되고 있고 심지어 법원에서 사용하는 상당 부분의 단어나 운영형태는 광복 이전의 기틀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사용하는 말 중에 영어, 일어, 중국어인 한자를 빼고 나면 실제 우리 고유의 단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혼용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일상 언어나 공용단어를 보면 한민족 고유의 발음을 더 정확히 사용하는 비중이 크다.

말은 해당 민족의 소통이자 문화이며 역사이고 자산이다. 그러므로 일제 식민지시대에도 한글과 우리말을 지키려고 숱한 희생을 치러가며 버텨온 것이다. 시대변화와 문명의 발달이 환경을 다르게 만들지라도 글이나 말이 변형되면 바로잡기 매우 어렵다.

이유인즉, 자연스런 생활속의 활용이므로 누가 특정하여 수정하거나 대안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우리말의 정체성이 훼손된다면 10년 쯤이나 뒤에는 영어로 일상생활이 전환될 뿐만 아니라 언어로 인한 문화, 예술, 스포츠는 물론 모든 문서에도 한글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다 결국에는 사라질 것이다.

이 같은 우려를 표명하는 것에 대해 지금은 설마 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감하게 될 것이며 덕암 칼럼이 1만 건 이상 쌓이는 2040년 쯤에는 덕암 칼럼도 영어로 번역해야 읽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래서는 안 된다. 오늘은 왜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먼저 오늘은 ‘국제 모국어의 날’이다. 인류가 전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약 6,000여 개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특히 세계화의 물결 속에 영어를 비롯한 몇 개 언어의 지배 현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으며 인터넷이 그러한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이에 대항해 각 민족의 모국어를 지키고 문화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여러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그러한 날을 기념하여 각 국가별 언어를 지켜내자는 뜻에서 정한 기념일이다. 매년 2월 21일 유네스코가 언어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국어를 존중하자는 뜻에서 지정한 기념일인데 1999년 지정됐다.

이날이 기념일로 정해진 데는 나름 의미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후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과 한데 묶여 동파키스탄으로 독립하지만 종교만 같을 뿐, 지역적으로나 언어에서 다른 말을 썼다.

파키스탄은 우르두어를 쓰고, 방글라데시는 벵골어를 썼는데 이러한 언어 환경의 차이는 곧 탄압으로 이어졌다. 마치 일본이 조선말을 쓰지 못하도록 말살정책을 펼친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파키스탄은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방글라데시의 언어를 말살시키고 우르두어를 공용어로 결정하자 이에 대항하여 벵골어를 지키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날이 1952년 2월 21일이었는데 4명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학생들이 다치는 등 민중봉기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방글라데시의 독립운동이 불길처럼 번져 마침내 1971년,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방글라데시는 이날을 ‘언어운동 기념일’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광복이나 다름 없는 것인데 바로 언어를 지키려는 일이 동기가 된 것이다.

그만큼 자국의 언어는 소중한 것이므로 1999년 유네스코가 제30차 총회에서 매년 2월 21일을 ‘국제 모국어의 날’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켜내기는커녕 스스로가 말살하기에 바쁜 자폭 수준이다.

유네스코는 모국어를 지키는 일이 자국의 정체성을 존중받고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쯤되면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사용한 외래어가 얼마나 줏대 없는 버릇인지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마치 개가 고양이 소리를 내고 새가 호랑이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이 자국어를 지켜낸 방글라데시 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고초를 이겨낸 선조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해야 한다.

지난 일은 지났으니 그렇다 치자. 앞으로라도 개선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말을 지키자는데 이런 주장조차 촌스럽게 느껴진다면 그렇게 느낀 사람은 미국으로 이민가라. 한국에 살면서 한국말이 부끄럽거나 쪽팔리는 일이라 여겨지면 한국에 살 자격이 없는 것이다.

말은 글이 되고 글은 뜻이 되는 것이며 뜻이 바로 세워져야 우리음식, 우리 옷, 우리 풍습, 우리 습관, 우리만의 열정과 성취감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래서 신토불이, 몸과 흙이 하나 됨을 뜻하는 말이 생긴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부터 실천해볼 것을 권한다. 순수한 우리말을 신경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영어에 차츰 길들여져 있음을 자각할 수 있으며 사소한 일상에서도 외래어를 줄이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가장 쉽고도 매우 중요한 나라사랑의 실천이다.

스마트폰 대신 손 전화, 좀 불편하면 휴대폰이라 하자. 그리고 스케줄 대신 일정표, 원샷 대신 건배, 이러다 보면 한류열풍이 국제사회를 지배할 것이고, 한글이 전세계 공통어가 될 것이며 우리말을 모르면 외교도 관광도 할 수 없는 미래가 올 것이며 한류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 한국어 고액 어학원을 차려 떼돈을 버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학원을 에듀파크라 하고 가맹점을 프랜차이즈라 말해야 하는 날은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말은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환경파괴도 없고 원재료 값도 안 들어가는 말의 수출, 가장 과학적인 말, 문자 올림픽에서 매년 금메달을 획득하는 한글,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적 긍지이며 자부심일까. 우리는 지금 그 중요한 것을 차츰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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