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인륜지대사 변화인가 붕괴인가
[덕암칼럼] 인륜지대사 변화인가 붕괴인가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4.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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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인류사회가 오랜 시간 만물의 영장으로 위치를 영위할 수 있는 건 인간 스스로의 생각 일뿐 다른 분야에서는 그리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천년바위가 그러하고 제 아무리 문명의 발달로 막강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어렵사리 쌓아놓은 문명도 인간들 스스로의 전쟁과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걸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한때 번성했던 해저도시 아틀란티스도 그러했고 고대 로마의 빛나는 문명도 그러했으며 한반도만 하더라도 6·25전쟁과 일제강점기 이전에 찬란했던 문화가 초토화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70억 명으로 늘어나기까지 먹고 자고 배설하는 과정에 임신과 출산과 질서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삶의 가치를 고민했던 흔적들은 각 민족의 풍습이나 문화가 특색있게 성장했기에 지금의 국가별 종교, 경제, 문화예술, 복지 등 분야별 성장도 이뤄냈던 것이다.

그중 출산은 각자의 생일, 즉 태어난 날이지만 성장하여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다가 때가 되면 저승길로 가는 것이 인지상정 순서였다. 여기서 인류의 공통적인 큰 행사를 우리민족은 ‘인륜지대사’라 하는데 대표적인 행사가 결혼식이고 다음이 장례식이다.

과거에는 마당에 천막을 치고 솥단지 걸어 소머리도 삶고 전을 부치는가하면 일가친척과 동네사람들이 한바탕 잔치로 치러왔는데 작금에는 웨딩뷔페라는 영어로 지칭된 결혼식장이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내듯 1시간에 한 쌍 꼴로 처녀·총각을 아저씨·아줌마로 만들어 낸다.

뻔한 식순에 식상한 이벤트는 이제 주인공인 신랑·신부보다 하객들이 더 선수를 친다. 일부 하객들은 일찌감치 피로연 장소에서 모니터를 통해 식사를 하며 지켜보는가 하면 식사보다 답례품과 주차권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축의금 봉투와 화환의 진열숫자에 따라 외부에 보여주는 당사자의 뿌듯함이 더해지니 이제 막 결혼할 나이에  잘 나면 얼마나 잘 났을까. 실제 결혼식은 부모님의 사회적 현주소고 부모님의 장례식은 자식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사로 치러진다.

결혼 대비 이혼율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면 재혼식 또한 만만찮은 시장성을 갖추고 있다. 장례식 또한 마찬가지다. 상조회사의 범람으로 대부분 장례식장은 알짜배기 실속은 진즉 배제된 상태다.

소위 돈 될만한 제단의 조화나 수의 등 장례용품이나 발인에 이어지는 운구차량, 장지에 도착하기까지 고인의 집이나 사업체를 돌아다니면 일명 ‘삥땅’을 뜯는 일도 이제는 먹히지 않을뿐더러 장례식장에서 제공되는 음식의 리베이트도 거품이 빠진 상태다.

이러다 보니 결혼식도 장례식도 점차 하객이나 조문객들이 줄어들고 그나마 지금은 기본적인 문상절차라도 있지 향후 20년은커녕 10년만 지나도 인륜지대사는 온라인으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편리할까.

물론 쓸데없는 허례허식에 실속을 기하는 긍정적인(?)측면도 있겠지만 사람 구실 한다는 의미는 그만큼 실종될 것이다. 이제 출산율의 저하는 사회적 풍습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형제·자매가 있어야 친척이 있을진대 정이 실종된 사회에서 남까지 공감대를 형성하여 큰 행사를 치를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걸 사회라 하는데 편리함만 찾고 진정한 가치를 소외시 한다면 결국에는 민족의 고유 명절이나 국가기념일도 기피하는 종점에 도달할 것이다. 각자가 아파트 문 안에서 배달시켜 먹고 자고 배설하며 소통은 온라인으로 하고 정의 실종에 대한 감각마저도 무디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쯤에서 우리는 변화에 대한 방향을 찾아야 한다. 한 나라의 문화와 풍습, 역사가 통째로 변질되는 과정에는 각 개인이 느끼지 못하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때로는 힘들어도 출산장려와 민족의 찬란하고 독창적인 문화는 유지해야 한다.

특히 결혼과 장례 문화가 이대로라면 제 아무리 군사, 경제가 발달한다해도 그 나라는 통계상 우수할 뿐, 진정한 삶의 가치는 사라진 채 얼마 못가 해저도시 아틀란티스처럼 전설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안을 찾아보자. 국민들에게 세금을 걷어 도로·항만 ·철도 등 국가 기반시설도 마련하고 미사일에 첨단 무기 개발로 국방력도 갖추어야 한다. 비용 대비 효율성이 추락하는 교육예산도 편성해야 하고 복지라는 허울 속에 밑 빠진 독의 물을 붓는 것도 필요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김정은 헛기침에 정책이 뒤집히는 통일부는 국방부의 일개 부서로 귀속시키고 오보 비율이 높은 기상청은 민간시장을 개방하여 전국의 각 도나 광역시마다 개별적인 예보를 통해 다양한 채널의 일기예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보의 정확도에 따라 살아남고 사라지는 시장논리도 적용하여 귀한 세금이 적시적소에 쓰이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예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국민윤리부를 신설하여 결혼식과 장례식에 대한 절차에 대해 어느 정도는 국가가 재정도 지원하고 법률적 조항도 정하여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해야한다.

아이·어른이 구분 되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당연시 여겨야하며 촉법 관련 법안도 개정하여 죄에 대해 연령이 면죄부를 주는 부작용도 개정의 여지를 가져야 한다. 가령 미성년자를 고용, 훈련시켜 중대 범죄나 성매매의 도구로 사용한다해도 당사자의 연령이 낮다는 이유로 수사범위를 벗어나는 비합법적 현상을 제한해야 한다.

필자가 1990년 노동운동을 한답시고 민중가요를 외치던 시절,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유행하던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일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자본가여 먹지도 말라”며 소리치던 당시의 논리는 어렵사리 공장이나 기업체를 운영하던 사주에게 치명적인 반항의 전주곡이었다.

같은 목소리라도 적용하기에 따라 다르고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다. 지금같은 사회적 병리현상을 계속 방치하다가는 결혼, 출산, 근로의욕, 그리고 위·아래도 없이 막 가는 대한민국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래를 안다면 그 대책을 현실에서 세우지 않은 자, 묵시적 침묵으로 방관하면 공범이 된다. 생선의 부패를 방관하는 염기 없는 소금은 이미 소금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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