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우리강산 푸르고 울창하게
[덕암칼럼] 우리강산 푸르고 울창하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0.1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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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강물과 바다는 영하의 날씨에 얼어붙는 것 외에는 다른 변화가 없지만 산은 춘하추동 모두 다른 모습이다. 특히 지구 적도를 중심으로 38도선에 위치한 한반도는 사계절이 있어 같은 산이라도 계절마다 봄꽃으로 덮였다가 가을 단풍으로 갈아입는 연출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가 산은 어머니 품과도 같이 푸근한 느낌을 준다. 큰 비용들이지 않고 운동 삼아 자연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등산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활체육이기에 관광버스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사계절 중 어떤 계절을 선호 하는지, 각자의 취향이겠지만 필자는 가을 산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는 동네 앞산인 태백산을 수 십 차례나 올랐었고 먹고 사느라 바빴던 젊은 시절이 지나 50대에 들어서는 모임을 갖고 전국의 산을 헤집고 다녔다.

건강을 목표로 설립된 의료 특강 리더스 힐링 아카데미를 결성하여 매월 1차례씩 명산에 족적을 남기기 시작한지 수 년이 지나자 수 십 곳의 자연풍광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기적은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산행은 2006년 3월 새벽 2시 태백산의 천제단을 단독 산행으로 오를 때였는데 칠흑 같은 어둠을 한 걸음씩 올라가다 중턱에 다다를 즈음 하늘과 땅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득 스며드는 공포감이 있었다.

두렵던 산기운이 윙윙거리며 을씨년스런 바람소리까지 더하자 혼자라는 생각이 이내 자연과 하나 됨을 공감하는 미묘한 경지에 도달했다. 두려움은 마음속의 자신과의 싸움이고 반대로 모든 자연환경을 내 것으로 수용하는 순간 공포감은 포근함으로 변하게 됐다.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에서 정상에 도달하자 서서히 여명이 대지를 밝히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산과 내가 하나됨을 수용하게 됐다. 기도를 마치고 하산하는 동안 선물 받은 일출풍경은 운해로 뒤덮인 천하의 첩첩산중이 모두 발아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새롭게 얻은 용기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물론 개인적인 사담이지만 이미 수천 년, 수백 년 전부터 산은 인간에게 많은 지혜와 풍성한 임산자원을 선물해 준 바 있다. 지구상에는 높은 산, 큰 산, 기암괴석이 수려한 산 등 많은 산들이 있지만 한반도처럼 오밀조밀하고 돌과 흙과 나무가 조화를 잘 이룬 나라도 드물다.

산림청은 2023년 단풍이 어디서부터 붉어지는지 시기와 지역별로 발표한 바 있다. 매년 9월말쯤에 전국의 주요 산들의 절정 시기를 AI를 활용해 예상해서 발표하고 있다. 단풍나무, 신갈나무, 은행나무가 50% 이상 단풍이 드는 경우다.

자연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2009년부터 해마다 0.4일씩 단풍이 늦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단풍지도를 안 볼 수 없다. 망설이지 말고 떠나라. 다녀온 후에 기억 속에 남은 소중한 추억은 자산이다.

올해 미루다 보면 내년도 미루게 되고 무릎이 시원찮아지면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곳이 산이다. 괜히 어설프게 임산물 채취하면 산림법에 저촉된다는 사실도 참고해야한다. 경기도는 양평에 있는 가장 높은 용문산을 시작으로 다음 가평의 축령산, 군포의 수리산 순서로 단풍이 물든다고 한다.

필자의 글을 보시는 오늘부터 서서히 시작된다고 하니 가벼운 등산복 차림에 간단한 간식거리라도 준비함이 어떨까. 올해 산은 올해 오르지 않으면 내년에는 이날이 오지 않는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충남 서산의 가야산, 계룡시의 계룡산, 충북 보은군의 속리산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괴산군과 경북 상주시를 포함한 광활한 지역이다. 위치를 동쪽으로 옮기면 경상도에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과 주왕산, 팔공산 등 많다. 다시 발걸음을 북쪽으로 옮기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천혜의 강원도를 만날 수 있다.

전국에서 단풍으로 가장 유명한 설악산이 있다. 바람이 강해 기온이 빨리 떨어져 단풍 절정 시기가 다른 산에 비해 빠른 편이다. 소위 악자로 끝나는 산은 모두 험한산으로 악명이 높다. 설악산을 비롯해 치악산 등 악자는 험한 만큼 정상에서 만끽할 수 있는 기쁨이 크다.

그렇다고 남쪽이라고 만만할까. 전라도로 가면 영암군과 강진군을 포함한 월출산의 경우 한라산보다 단풍 절정 시기가 늦다. 단풍놀이 시기를 놓쳤다면 뒤늦게 남은 곳이다. 대한민국의 끝자락 해발고도가 워낙 높아서 단풍 절정 시기는 한반도 남쪽지역에 있는 산들보다 다소 이른 편이다.

오늘은 2002년 UN이 ‘세계 산의 해’를 지정한 날이다. 산림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산림청이 제정한 기념일이고 매년 10월 18일이다. 국민과 더불어 산을 직접 체험하고 산림문화를 즐기는 가운데 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산림문화축제일이다.

기념일로 지정된 이유는 산이 가장 아름다운 10월 중, 단풍이 짙어지는 한로와 산에 올라 풍류를 즐기는 우리전통의 세시민속인 등고가 행해지던 음력 9월 9일에 인접한 날에서 한문으로 十자와 八자를 더하면 木자가 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번씩 산불이 날 때마다 울창한 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동·식물들이 삶의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산을 아끼는 일은 단순히 쓰레기 안 버리고 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며 너도나도 등산로가 빤들빤들하게 길을 냈기에 산도 쉬어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산과 하천을 보호해 원래의 자연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휴식년을 정했을까. 산은 높고 낮음이 있어 계곡과 하천이 동반된다. 하천의 피라미 한 마리.

봄꽃의 나비, 무성한 숲의 산새들이 먹고 자는 둥지, 모든 게 산의 주인이다. 섣불리 사람이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 적어도 올해 단풍놀이는 산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지키는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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