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재의 문학산책]비우고 초월한 시인 공초 오상순
[박상재의 문학산책]비우고 초월한 시인 공초 오상순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23.10.2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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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위에/보금자리 친/
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나의 魂(혼)…….//
바다 없는 곳에서/바다를 戀慕(연모)한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바다를 그려보다/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방랑의 마음」 1, 2연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의 시 「방랑의 마음」은 1923년 1월 <동명(東明)> 18호에 발표되었다. 시인의 초기 작품으로 전체 5연 22행으로 되어 있다. 오상순은 본래 기독교의 전도사였으나 얼마 안 되어 종교를 불교로 바꾸었다. 실제 생활에서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아다녔다. 평생 집 한 칸을 마련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결혼도 하지 않았다. 「방랑의 마음」은 이런 오상순의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시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오상순은 1894년 8월 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00년 어의동학교(현재 효제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고, 1906년 경신학교를 졸업했다. 1918년 일본 도시샤대학 종교철학과 졸업하고, 1920년 김억, 남궁벽과 함께 <폐허> 동인으로 활동했다. 1921년 조선중앙불교학교, 1923년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전국 여러 사찰을 전전하며, 참선과 방랑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폐허> 창간호에 「시대고와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 경향은 한마디로 ‘허무’의 탐구와 그 초극 의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방랑의 마음」, 「허무혼의 선언」, 「폐허의 낙엽」 등의 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6.25 후 1950~1960년대 초 명동에 모여든 수많은 문인, 예술가 중 역대급 기인을 꼽자면 단연 승려 출신의 시인 오상순이다.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담배를 입에 떼지 않았다는 그의 호가 공초(空超)가 된 것도 하루 담배 200개를 피운 ‘담배 골초’에서 따온 것이다.

  “술이라면 수주(변영로)를 뛰어넘을 자가 없고 담배라면 공초를 뛰어넘을 자가 없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니 그의 애연은 알아줄 만하다. 술을 좋아하는 시인 변영로와 친구로 지내며 일제 강점기의 암울함을 어둡고 절망적인 시를 통해 표출했다. 

  당시로서는 학벌이 좋았음에도 그 어떤 자리도 맡지 않고 명동 다방에서 담배 연기와 사색으로 시간을 비워냈다. 명동 청동다방은 그가 즐겨 찾던 아지트로 노벨상 수상 작가 펄 벅도 찾았었다. 젊은 시절 오상순은 중국을 여행하며 문호 루쉰 등 지식인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일본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여 교회 전도사가 됐으나 후일 불교로 개종했다. 

  공초는 평생을 무소유로 살아 생전에 시집 한 권도 내지 않았다. 돈벌이가 없어 입에 물고 살던 담배도 제자들과 지인들이 제공했다. 그는 1963년 69세로 타계할 때도 조계사의 허름한 헛간방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지는 수유리 북한산 등산길 옆에 있다. 오상순은 그를 스승으로 모셨던 시인 구상이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부탁하여 이곳에 묘지를 쓰게 했다. 오상순의 호 공초(空超)는 비우고 초월한다는 뜻이다. 

  그의 사후에 작품 38편을 모은 유고 시집이 출간됐다. 서예가 김응현의 명필로 새긴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은 문학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1956년에는 예술원상, 1962년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63년 제자들에 의해 『공초 오상순시집』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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