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달라진 설 명절
[덕암칼럼] 달라진 설 명절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2.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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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달라도 너무나 달라졌다. 10년 주기로 달라지던 명절 풍경이 이제는 5년 주기로 달라지고 있다.

여기서 변화란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면도 있지만 마치 개구리가 천천히 데워지는 물속에서 기분 좋게 죽어가는 것처럼 우리네 미풍양속의 고고한 가치와 민족혼의 찬란한 정신세계가 망각의 길을 걷고 있다.

2024년 설 명절은 2024년 1월 1일이 아니라 2월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력설을 명절로 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니라 할 수 없다. 오로지 서양만 흉내 내는 우리네 약소국가의 미래는 아마도 음력설이라는 명절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미 절기상 행해오던 정월대보름과 단오 등 어지간한 미풍양속은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꼰대들의 일면으로 치부된 지 오래다. 주거문화는 각자도생이고 저출산으로 인해 형제·자매가 사라지니 당연히 이종사촌·고종사촌도 없을 것이며 사촌도 없는데 무슨 오촌과 육촌이 있겠으며 친척도 없는데 결혼식과 장례식 객석은 누가 채울 것인가.

이러한 변화의 주기가 급속히 빨라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암담한 것이 현실이다. 과거 고향 가는 기차 표를 예매하느라 역 앞에서 밤새 줄을 섰던 진풍경도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암표들이 기승을 부렸고 양쪽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정든 고향을 향해 지친 몸을 지친 기색 없이 달려갔던 시절이 있었다. 시골 부모님들은 땀 흘려 농사지은 농작물들을 모아두었다가 귀경길 승용차 트렁크를 채워주었다.

아이들도 층간소음 걱정 없이 시골 마을을 뛰어놀았고 모처럼 만난 사촌들과 정을 쌓고 추억을 만들었다. 언론에서는 민족 대이동이라 불렀고 전국의 극심한 고속도로 정체 현상에 짜증 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찾아갈 고향도 고향을 지키던 부모님 세대들도 점차 사라지고 그 흔적만 조금씩 남아있다. 시골 마을에서 어렵사리 공부해 서울로 상경했던 촌놈들이 이제는 명예퇴직하고 하나 둘씩 사회적 퇴물이 되어 날고 기던 젊은 날을 회상하는 실업자로 전락했다.

이제 설 명절은 연차·월차를 포함해 일주일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대세다. 인천국제공항에는 보란 듯이 수십만 명이 캐리어를 끌며 출국 심사대를 거쳐 갔고 그나마 국내 관광지에는 예약이 만료되어 빈 방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제 설 명절에 떡국을 끓이거나 한복을 곱게 입고 세배를 하는 모습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에게 절하지 말라 했고 필자의 가족 중에서 목회자가 있어 절하는 모습이 어색해졌다.

그래도 설날 돈이 오가는 풍습이 있어 너나 할 것 없이 봉투에 얼마를 담아야 좋을지 고민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2025년이 되고 2030년이 되면 지금은 상상도 못할 만큼 설과 추석 명절이 달라질 것이다.

그때 가서 보면 지금은 그나마 절이라도 하고 돈봉투라도 오가는 장면이 케케묵은 구시대적 꼰대들의 못난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아마 얼굴조차 볼 수 없이 다들 여행을 떠나고 텅 빈 도심은 일부 편의점에 가서야 생필품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세뱃돈은 계좌로 이체하면 된다. 늙은 세대들은 빈 방을 홀로 지키며 TV 앞에 앉아 아 옛날이여를 부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뻔히 예견되는 미래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미풍양속을 지켜낼 방안을 구상하는 게 옳은 것일까. 부모의 현주소가 이러는 동안 집집마다 반려견이 자리 잡은 안방에는 온갖 애견용품이 가득할 것이고 그때쯤이면 한복은 애견들이 명절날 입어야 할 필수 의류가 될 공산이 크다.

급격히 줄어든 입학생들로 인해 학교도 하나 둘 씩 폐교 절차를 밟을 것이다. 그래도 교육예산은 더 증액되어 어떤 방식이든 교육계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니 그렇다고 교육의 질이 좋아져서 세계 일류대학 순위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운이 좋아 남북간 국지전이 발발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대한민국 사회는 현 상태를 유지하겠지만 사람 사는 사회가 사람 냄새가 나야 하는데 기계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스스로 만든 온갖 규제에 묶여 4차 산업의 변화에 적응하느라 1차·2차 산업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모두 빼앗기는 미래가 충분히 예견된다.

아프리카 후진국들도 그들만의 풍습은 지키고 선진국과 강대국들도 자국의 문화예술은 지켜갈 것인데 이도 저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세계는 모두 종교단체나 외래 문물에 밀려 존립 여부조차 불투명해질 것이니 이 어찌 사람 사는 나라라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미 늦어버린 저출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양이 안 되면 질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숫자도 급격히 줄어드는 나라가 인격이나 각자의 정신세계마저 삭막해진다면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회복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혼은 누가 살릴 것인가.

국회의원과 돈 많은 기업인들이 살릴까. 대안이 있다면 각 나라마다 지키고 있는 문화, 예술, 혼, 풍습 등 우리 고유의 유산을 지켜내는 일이다. 명절도 없고 절기도 없이 오로지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면 자본주의 장점이 단점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정부 부처는 국민윤리부와 효도청을 신설해 예절과 배려가 넘치는 사회, 적어도 부모를 요양원에 고려장 시키고 찾아도 보지 않는 배은망덕의 처참한 미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설 명절과 추석, 단오, 동지, 삼복 정도라도 지키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로지 게임에만 열중해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현재의 청소년들이 이대로 성장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보나 마나 망국의 지름길로 접어들게 된다. 무한경쟁의 시대를 조성해 1등만 배 터지게 살고 나머지는 배고파 힘들어지는 사회는 지양해야 한다.

10년 정도 지나면 우리말과 글도 모두 영어로 통용되며 현재 문화, 예술, 체육이 그러하고 경제와 교육, 복지도 모두 미국 흉내 내기에 급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