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코만 만져보고 긴 동물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이듯 하나만 보고 전체를 판단한다면 그 기준점은 자칫 본질과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이른바 통계라는 분야가 그러한데 인구를 비롯해 모든 분야의 크기나 질량, 성분과 분포도까지 다양한 결과를 예상할 수있다.
특히 요즘 선거철에는 투표도 하기 전에 예상치를 결과치로 속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불분명한 예측을 마치 정확한 예견인 것처럼 판단하고 이로인해 불거지는 모든 피해가 절대 다수의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면 아무리 명분이 뚜렷하다 하더라도 원인 제공자의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의료진과 정부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을 보면 누가 봐도 의료계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인다.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 첨단 의료 시설을 기반으로 환자에게 적당한 처방전을 발급해 약국이 의약분업의 역할을 맡도록 최상단의 위치에 있는 것도 의사의 역할이다.
그래서인가 의료파업 현장에 제약회사 직원들이 동원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서서히 일이 커지고 있다. 제약회사의 납품 관련 로비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로 안 되면 그다음 어떤 분야를 척후병으로 내보내 정부를 겁박하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버틸 것인가.
의료계는 전공의와 간호, 물리, 방사선, 약국과 제약회사, 의료폐기물 등 다양한 분야가 있고 환자를 치료하고 의료수가를 올리면 이를 반영해 의료비 부담을 맡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혹시 과도한 의료비 청구 검증을 위한 심사평가원. 의료기관의 규칙·준수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지도·감독을 맡은 각 지자체의 보건소, 의료전문 언론사들의 취재 등을 포함해 간혹가다 오진으로 환자가 사망했다며 병원이 손들때까지 피켓 시위로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과거처럼 까라면 까는 시대가 지나다 보니 근로환경이 조금만 과해도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뒷받침하는 인력들의 이직률도 높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다 보니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군기.
아니 의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과거처럼 폭언·폭행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는 시대다. 얼마 전에도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스스로 마취 주사를 놓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병원 내부에서 일명 왕따가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역사회에서 보는 눈이 곱지 않다. 일반 국민들은 집안에 의사가 있다고 하면 혼삿길도 탁 트이고 마치 벼슬이나 한 듯 뿌듯해한다.
왜일까. 높은 연봉, 편안하고 안정된 근무환경, 의대 졸업생이면 직장은 떼놓은 당상인 듯 부모들조차 안심한다. 어떤 직종이든 일장일단은 있는 것이다. 의료계의 경우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의사보다 더 똑똑한(?) 환자들이 즐비하다.
이는 변호사보다 더 똑똑한 의뢰인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변호사라는 직종이 더 이상 꿀 보직은 아니라는 점이 증명된 것과 같은 이치다. 웬만한 준비서면, 고소장, 항소 이유서나 답변서는 법률용어를 조금만 공부해도 사실에 따라 충분히 써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런 날이 오기까지 일부 변호사들의 안일한 변호업무, 밥그릇 지키기에 비중을 두고 의뢰인으로부터 신뢰를 잃기까지 긴 세월이 있었다. 서울 서초동이나 되면 몰라도 지방으로 갈수록 변호사들의 수임 건수나 변호 비용은 턱 없이 낮은 실정이다.
하다못해 일부 변호사는 사무장들 월급과 임대료조차 내지 못하고 여러 명이 통합으로 법무법인을 구성해 여직원 한 명의 급여를 갹출해서 내는 형편이니 더 말해 뭐할까. 이제 AI가 대세다.
자칫 일반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더 나은 건강비법을 연구하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병원의 공공연한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래서 국민들이 지금처럼 밥그릇 싸움에 지치고 심지어 환자들의 사망사건이 늘어난다면 그때 가서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어렵사리 공부해서 의대 졸업하면 먹고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명색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지엄하고 위대한 직업. 그래서 의사라는 직업이 판사, 검사, 변호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결혼정보회사에서도 1급으로 등급을 정한다고 한다.
일명 ‘사’자가 들어가는 전문직종. 이제 수요 대비 공급을 우려하던 정부가 정확한 명분으로 의료계의 개혁을 시작했다. 이미 의대 증원의 필요성과 의료계의 반발 정도는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가 집회시위를 번복하고 교통, 운수, 심지어 인권조례 개정을 주장하며 교사들까지 거리로 나섰다. 대한민국은 촛불만 켜면 다 해결되는 것이고 집회시위나 파업만 하면 다 먹히는 세상이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진행된 의료대란이 앞으로도 더 이어진다면 과연 어떤 흔적을 남을까. 위중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어떤 눈으로 지켜볼지도 생각해야 한다. 먼저 정부의 강대강 시도와 협의를 추구하는 통로가 좁았다.
이런 일이라면 점진적 접근으로 의료계에 대한 그들만의 카르텔을 초월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대화 시도가 먼저 있어야 했다. 어떤 분야든 그들만의 세계는 존재한다.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똑같이 사탕 열 개씩을 나눠줘도 몇 시간이 지나면 각기 가진 사탕의 숫자가 달라진다.
그들만의 존재를 무시하고 칼을 뽑아 드니 어떤 분야에서 고분고분 순순히 순응할 것인가. 접근부터 문제였고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판을 키우는 건 명분에서 불리하다. 지금도 묵묵히 본분을 지키며 현대판 허준 선생으로 인체의 신비함과 소중함에 혼신의 정성을 아끼지 않는 의료진이 도매금으로 취급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병원을 위한 병원이 되기 전에 환자를 위한 병원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위한 의사가 되기 전에 환자를 위한 의사가 되어야 한다. 아주 원만하게 해결될 묘수에 더 없는 악수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