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브로커와 로비스트
[덕암칼럼] 브로커와 로비스트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3.1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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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브로커와 로비스트. 전자는 사기꾼과 같은 선입견을 심어주지만 후자는 전문직을 의미하는 단어다. 하지만 하는 일은 유사한데 중개수수료를 받는 직업은 다양하다.

어쩌면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직업이 모두 중간이윤을 챙겨야 이득을 보는 것이고 밑지는 장사는 자원봉사가 아닌 다음에는 없는 것이다. 먼저 진실과 현실의 차이점을 보자. 진실은 돈.

즉 뇌물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거래가 형성되는 것이고 양자 간에 이득이 전제되어야 성립되고 유지될 수 있다. 길게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 예산에서 세수 수입 대비 지출 명세를 보면 당해연도에 모두 지출해야 이듬해에도 편성될 수 있기에 연말이면 멀쩡한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을 마구 파헤쳐 예산소진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또한 모든 관급 자재 납품과 인력, 건설, 문화예술,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출해야 한다. 같은 분야라도 경쟁자들의 치열한 로비 능력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원만히 흐르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 공개입찰이라는 창구를 만들어 놓았지만, 어느 것 하나 아무런 노력이나 로비 없이 저절로 낙찰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사회가 점점 맑아지고 있다. 아니 말라가고 있다.

과거 고속도로 한복판에 순찰대가 오토바이를 타고 운전자의 통행을 가로막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안전은 뒷전이고 사람이 도로변에서 스피드건으로 단속하는 행위가 당연했다.

갓길에 차를 세운 운전자가 5천 원과 면허증을 주면 서로 미소 짓고 과속은 위험하니 주의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운전자는 3만 원 대신 5천 원으로 해결하고 멋진 포즈의 오토바이 경찰은 단속을 마치면 무릎까지 올라오는 말 장화에 지폐가 우수수 쏟아내던 시절이 있었다.

이미 공소시효도 끝났고 훈훈한 미담 정도로 치부되는 전설이지만 운전자와 경찰이 서로 껄끄럽지 않았다. 과속으로 달리다 보면 마주 오던 차량이 상향등을 깜빡이며 단속 경찰이 있음을 알려주고 이러한 배려와 의리는 모든 운전자들이 공유하는 밀약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경찰의 단속이 없어도 블랙박스에 찍힌 도로교통법 위반 차량을 서로 밀고해 범칙금을 내게 만든다. 법 준수에 대한 의식 함양이라는 장점도 있겠지만 서로 믿지 못해 신고가 신고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 증가한다면 과연 전자와 후자 중 어느 편이 더 나을까.

이 시절에는 공무원과 업자와의 유착관계는 당연했다. 특히 단속 권한을 가진 공무원은 하늘이었고 업자는 봉이었다. 도로 보수직을 맡은 최하급 직원도 건설현장 입구에서 몇 번만 단속하면 당일 저녁 일식집과 룸살롱 접대가 당연했다.

모두 필자가 겪어본 체험이었기에 강조할 수 있다. 서두가 구구절절 긴 것은 최근 정부가 의료대란에 대해 의료진의 뇌관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도 있지만 손대서는 안 될 분야도 있다.

간혹 뉴스로 취급되는 의사들과 제약회사 간의 유착관계인데 주고받는 당사자만 입 다물면 절대로 캘 수 없는 비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주목받고 있다. 금품 이외에도 의사들이 온갖 갑질로 제약회사 영업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보도 내용이다.

이를 방증하듯 의료진 집회에 제약회사 직원들이 동원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분야에는 그들의 세계가 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정겨운 시골 마을도, 들짐승, 날짐승, 물고기, 곤충까지 그들만의 세계는 텃세라는 게 있고 그 공존의 공간에는 깨지지 않는 룰이 있다.

물론 일부 의료진에 국한되는 일이겠지만 마치 전체 의료진 모두가 제약회사 직원에게 갑질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커다란 오산이다. 속칭 짭새로 취급되는 비리 경찰 1명이 있다고 국민의 치안담당에 자부심을 갖고 헌신하는 전체 경찰을 도매금으로 넘겨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제약회사와 병원의 관계가 갑과 을이 아니라 업무적 공생 관계로 납품 조건을 맞추기 위한 영업 전략인 것인데 이것마저도 정부가 의료대란을 누르기 위한 무기로 삼는다면 판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총선의 요란함에 뉴스 소재에서 밀린 의료대란은 물밑에서 해결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환자들만 애를 태우고 있다. 정부와 의사가 이런 식으로 맞불을 놓는다면 그 불똥은 보건복지부는 물론 정부가 당초 국민건강의 미래를 위해 추진했다는 명분마저 잃게 될 수도 있다.

이제 이 사회 어떤 분야도 맑아지면서 말라졌다. 서로 경계하고 신고하는 악순환 속에 단속 공무원들만 편해졌다. 그리고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한숨과 눈물 속에 누군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소해 하고 있다.

멀쩡하던 사회가 병들고 멍드는 것은 협력이라는 공감대보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이끄는 안일하고 편협한 정책이 낳은 사생아인 셈이다. 윤석열 정부에게 당부한다. 노동단체와 의료진은 업종별로도 다르지만 접근방법도 달라야 한다.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휘두른 칼날에 노동단체가 일시적으로 숨죽였다고 같은 방법으로 의료진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국민생명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 그들만의 공간인 제약회사와의 공존이 마치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국민들이 오해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가 브로커 아니면 로비스트들의 노력으로 성사되는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고자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까지 들춰내면 누가 먼지가 더 많이 날까.

사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쯤에서 타협을 보지 않으면 양쪽 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