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우리 역사에 준 영향
불교가 우리 역사에 준 영향
  • 이학근/논설위원 kmaeil.com/co.kr
  • 승인 2007.05.2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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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1년 4월 8일 (2007년 5월 24일) 부처님 오신날을 추모하며 석가모니가 우리역사와 인류에 미친 영향은 어떠했는가. 석가모니는 지금으로부터 2551년전 히말라야 산맥의 기슭에 있던 카필라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모의 손에서 자라면서 학문을 닦았다. 그는 일찍부터 인생(人生)의 덧없음을 크게 슬퍼하였다. ‘사람은 태어나서 나이가 들면 늙고 병들어 마지막에 죽는다. 그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늘 우울했다.
그는 마침내 29세때 아내와 자식과 궁전을 떠나 수행(修行)길에 올랐다.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으나 만족하지 못한 그는 ‘진리는 스스로 터득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고 홀로 산속에 들어가 굶주림과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오직 한마음 한뜻으로 정신을 통일하고 높은 진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6년이란 세월이 지나 그가 35세되던 어느날,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문득 진리를 깨닫게 되어 부처(깨달음을 얻음 사람)가 되었다.
지금의 네팔에 있던 석가족 중의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서 부러울것 없는 그였지마 당시 계급 사회인 카필라국에서 브라만이란 제사를 맡은 승려계급, 왕족, 귀족으로 군사나 정치를 맡은 크샤트리아 농업, 상업, 공업에 종사하는 바이샤라는 일반평민과 아리아인에게 정복당한 원주민과 그 자손은 수드라라고 하는 노예 계급의 신분사회가 엄격했었다.
나라안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인간에게 피할수 없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슬픔을 알게되고 그는 사람들을 이 고통과 슬픔에서 구해내려고 결심하고 장차 왕이 되는 지위와 모든 영화를 버리고 왕궁을 빠져나와 6년간의 수행(修行)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이리하여 불타(깨달은 사람)가 된 석가모니는 “어떤 신분을 가진 사람이든 부처님 앞에서는 평등하며, 누구라도 욕심을 버리고 바른길로 나아가면 깨달음을 얻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교하여서 카스트제도에 시달리고 있던 바이샤, 즉 일반 평민들이 환영을 받았으며 서로 앞을 다투어 이 새로운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서기 481년 가락국 김수로왕 6년 지금의 인도 아유타국 공주이신 허황옥과 그의 올아버지 옥보선인이 종자들을 데리고 입국하며 가야국 김수로왕과 허황옥과 결혼하며 10왕자 2공주를 났고 장자 거등 왕자는 왕위를 잇고 그 왕자는 허황후의 성씨 따라 허씨로하고 7왕자는 외삼촌인 허황후의 오라버지되는 옥보선인을 따라 가야산 운산원으로 들어가 수도하여 부처가 되었다는데 지금 경남하동군에 있는 칠불사 7부처가 그 7왕자라한다.
정사에는 없어도 김수로왕 설화에 나오는 허황옥과 옥보선인은 인도남방 아유타국 공주와 왕자이었고 아유타국이 망하자 동방으로 망명하였고 그때 그 옥보선인은 스님인것이 7왕자를 데리고 가야산 운산원에서 불교수도를 하며 부처가 되었다는 것 우리 나라 최초의 불교 전파된 사실이다라고 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372년에 백제는 침류왕 원년 384년에 백제는 침류왕 원년 384년에 신라는 법흥왕 15년 528년에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유입되고 신라선덕여왕때는 호국불교 통일 불교로 삼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구심점이 되고 국론 통일의 기반이 되었다.
후삼국 통일때인 935년 고려태조왕건은 후대왕에게 왕권의 길잡이인 훈요심조에 불교를 국교로 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합치고 불교를 받드는 민중행사를 ‘팔관회’ ‘연등회’에 치중하게 하였다. 고려는 호국 불교로 삼았으나 귀족과 승려의 타락으로 신돈, 묘청 등의 정치 개입과 반란으로 고려왕조 패망의 근원이 되었다.
조선왕조에 와서는 억불숭유정책을 썼으나 왕사는 고승 무학대사 같은 분이 조선왕조 창업에 큰 지주가 되었고 1592. 4. 13~1598. 11. 18 임진왜란시 평양성 탈환시 승병 3천명이 승병선발대가 되어 입성하여 호국공로가 있고 임진왜란 후 왜국 막부정권과 평화협정을 조선국에 유리하게 이끈 전설적인 사명대사 최근에 발견한 727년 신라 혜초스님의 서역까지 구법한 기록 ‘왕오천축국전’은 ‘실크로드’ 동서문물 교류에 공헌했음이 밝혀졌고 통일신라시절 민중에 파고들어 삶과 애환을 같이한 원효스님은 지금 일본국의 불교 길잡이 등불이 되었고 3·1절 독립운동에 앞장선 한용운 스님 8·15 해방후 혼란기와 개발시대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신 성철큰스님의 흔적은 우리 국민들의 가슴깊이 새겨져 있다.
유네스코 세계 종교과학문화재단에서 95년도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2000년도 고려 고종 때 청주홍덕사에서 백운화상이 저술하여 세계 초로 금속활자로 인쇄한 불교입문서 ‘직지심요결’및 세계 10대 역사 문화 유정지 경주 및 경주남산을 한국의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하여 ‘불교문화의 산실’이 한국이 되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은 부처님의 자비함을 국민 단결로 승화하여 동족인 백제, 고구려를 아울리는데 힘쓴 결과다. 2551년 부처임 오신날 계기로 통일의 그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이학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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