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현장에서 -4.19혁명과 5대 총선
역사 속 현장에서 -4.19혁명과 5대 총선
  • 이달순 수원대명예교수 kmaeil@
  • 승인 2008.04.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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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는 학생이 주동이 되어 시민의 합세로 자유당정권을 데모로 붕괴 시킨 혁명이다. 요컨대 혁명은 기존질서의 파괴다. 라스웰은 “혁명은 권위구조의 과격한 변화”라고 했다. 4.19는 정치혁명이다. 3.15부정선거를 본 국민들은 “부정선거 다시 하자”를 외쳤다. 폭력적이고 비합법적 정권탈취가 아닌 정상적인 투표에 의한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희망한 것이었다. 학생데모대에 경찰이 발포함으로써 유혈사태가 발생하고 이에 분개한 학생과 시민들이 자유당정권을 붕괴시킨 것이다. 4.19는 시민혁명이다. 중간계층인 학생과 시민이 주류를 이루면서 자유를 쟁취한 것이다.혁명은 과격하게 이루어진다. 그 뒤를 이어 탄생한 정부는 온건한 정부가 수립되는 혁명의 정율 같은 것이 있다. 1960년 4월26일 이승만은 12년 권좌에서 물러났고 허정의 과도정부는 온건파의 지배다. 허정은 4.19의 성적을 “혁명이 아닌 사태”로 단정했다. 6월5일 내각책임제 헌법의 공포와 더불어 각 정당은 5대민의원 입후보자와 초대 참의원 입후보자를 공천했으며 무소속 출마의 허용으로 입후보자의 난립현상이 나타났다. 7.29선거는 상이한 정당 간에 이루어진 정권투쟁의 형식을 취했다기보다는 민주당이라고 하는 1개 정당내 파벌 간에 이루어진 주도권 다툼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동면하고 있던 혁신세력들이 부상하여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등 여러 사회주의적 정당들이 만발했다. 경기도에서는 민의원 정원 25명에 243명이 입후보 9.7대 1이라는 전국에서 가장 격심한 경쟁률을 보였다. 제5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부재자의 우편투표가 실시되었다. 총선거의 결과 경기도에서는 민의원정수 25명 가운데 민주당이 14명의 당선자를 내어 의원정수의 56%를 차지했는데 무소속당선자도 11명이나 당선되었다. 그러나 군소정당에서는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민의원과 참의원선거를 동시에 실시한 7.29총선에서 참의원선거는 경기도의 경우 의원정수 6명을 선출, 투표는 제한 연기명식이었다. 5代의 당선자들은 자유당의 이승만 독재와 싸워 오신 분들이 당선되었다. 당시 민, 참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신구파의 대립은 노골화되었다. 구파는 분당하여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자파에서 차지하려 했으며 신파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안배를 주장했다. 결국 대통령에는 구파의 윤보선이 당선되었고 국무총리에는 신파의 장면이 당선되었다. 4.19로 인한 7.29 5대 총선으로 장면내각이 탄생한 것이다. 내각은 신파일색에다 구파에서 정헌주의원만이 입각했으며 그마저 나중에는 신파로 옮겨갔다. 현 한나라당의 주류와 박근혜 계파간의 갈등은 어떻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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