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국제질서의 어제와 오늘
동북아 국제질서의 어제와 오늘
  • 이달순 kmaeil@
  • 승인 2008.06.2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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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7월 9,10일 몽골수도 울란바트라에서 2008년 하계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된다.4세션으로 이루워진 주제는 1907년 제1차 러약협약을 중심으로 1세션에서 러일협약과 러시아와 러일협약과 간도협약이며 제2세션에서는 러일협약과 중국(청국)정부와 러일협약과 불란서의 평가이다. 제3세션의 소주제는 세계화 21세기 한몽관계와 러일전쟁이전 동북아국제질서와 몽고 그리고 러일협약 전후시기 한국지식인의 대외관과 북방사인식 등 발표자가 8명이다. 한국, 중국, 불란서, 러시아, 몽고 등 4개국 대학교수 등이다. 이창호 사단법인 아셈연구원장이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자격으로 개회사를 하고 김정길 전법무장관 이달순교수가 기조연설한다. 그 기조연설을 놓고 필자가 고심하는 잇슈를 독자와 상의하고 싶은 것이다. 기조연설의 제목을 “동북아 국제질서의 오늘과 내일”로 한다. 동북아의 중심지는 만주와 일본과 러시아이다.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의 담판을 한 것은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 황제대관식때라 하겠다. 1896년 5월26일 대관식에 축하객으로 온 일본의 야마가다가 러시아의 로바노프에게 한국과 만주를 분할점령하자고 제의했으나 러시아는 38도선 이남만 일본이 차지하여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마침내 1904년 2월8일 여순항을 기습 러·일전개시와 함께 승기를 잡는다. 미국은 재빨리 일본과 담합하여 일본의 한국식민지 점령을 후원하고 그들이 필리핀을 갖는 태프트-가쓰라 메모협정을 맺는다. 1905년 8월 포cm머스조약으로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게된다. 러일전쟁후 일본과 러시아가 가까이 하면서 1907년 7월 제1차 러일협약을 조인하게 된다. 그것은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철도 접속에 관한 것이었다. 이 협약은 북만주와 남만주의 분계선을 결정해 북만주는 러시아 남만주는 일본의 세력범위를 갈라놓는 비밀조약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조선에 있어서의 일본의 행동을 승인하는 대신 일본은 외몽고에 있어서 러시아의 행동을 승인했다. 1910년 4월에 조인한 제2차 러·일협약도 비밀협정을 포함하고 있다. 1907년에 확정지은 분계선에 의해 세력범위를 확정하고 그 여러 가지 행동의 자유를 상호간에 인정하는 것이었으며 만주를 양국의 특별이익지역으로 분할한 것이다. 더욱이 중국에 있어서 신해혁명 후의 1912년 7월에 조인된 제3차 러·일협약에서는 “내몽고”에 관해서 북경을 남북으로 통하는 선은 동은 일본, 서는 러시아의 특수권익으로 하는 밀약인 것이다. 이 러·일밀약이 몽골독립선언후의 내외몽고의 분열에 더더욱 심화시키는 일이 된 것이라 하겠다.한반도는 북한의 핵문제로 남북평화통일의 걸림돌로 되어있어 이를 풀기위해 미, 일, 러, 중, 한국, 북한이 6자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동북아의 오늘의 현실을 풀어나가는 지혜를 독자여러분과 모아 보자는 것이다.
이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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