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경제위기속에 맞는 새해
제2의 경제위기속에 맞는 새해
  • 경인매일 kmaeil
  • 승인 2009.01.06 2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원대 명예교수 ·계명고등학교장 이 달 순
1997년 말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외국투자가들은 한국의 경제도 곧 어려워질 거라 판단하여 투자자금을 대규모로 회수해갔다. 30개로 늘어난 종합금융회사가 외채를 끌어와서 어음교환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한보와 기아가 12조원 가량의 대형부도사태를 일으키는 등 기업이 부도를 일으키게 되자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급속히 감속하여 사용가능한 외환보유고가 60억 달러에 불과한데다가 다음해까지 상환해야 할 부채총액은 1천1백60억 달러에 달한 것이다. 이에 1997년 12월3일 IMF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모두 550억 달러를 융자받기로 합의했다. 한국이 IMF에 가지않고 외환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들이 몇 가지 있었다. 한일 최고위층 경제관료들 간에 구상중이던 AMF(아시아통화기금) 창설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거센 반발로 좌초되었다. 그리고 다른 방식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직접 융자를 받는 것이었다. 이것도 모두 거절당했다. 한국은 연간 총 생산액이 5천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무역 11위 국가였으므로 채무상환 능력은 충분했다. 깡드쉬(IMF총재)에게 서명한 뒤 단기금리를 12.5%에서 25%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협약에는 없었던 정리해고제수용 외환관리법 전면개정 적대적 인수 합병허용 등을 추가 실시하도록 하였다. 이후 1998년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1차로 55개 기업이 퇴출하고 1999년에는 대우그룹이 환율하락으로 부채가 65조가 되었고 2000년 2차 기업 퇴출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2001년 8월 23일 한국은행의 차입금으로 IMF의 구제금융 관리체제에서 공식적으로 일찍 졸업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우리국민은 아주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 등으로 일치단결하였으며 과거의 무사안일주의가 타파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제 2008년에 시작된 새해로 넘어오는 경제위기를 보자 미국의 모기지 금융위기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전자 자동차 조선 등 한국경제를 견인하던 주요업종에 “쓰나미”가 닥쳐온 것이다. 수출의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전자업계가 크게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한때 달라박스로 통하던 조선도 하반기 들어 국제교역량 감소로 선박 발주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수주가뭄에 시달릴 것이다. 지난해 연간 수출 4000억 달러를 돌파한 우리나라가 아닌가, 그래도 우리는 외환보유액 2천억 달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와 함께 3백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등 외화보유고 바닥으로 일어난 10년 전의 경제위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다만 실물경제의 급격한 추락으로 고용사정이 악화되면서 사실상 백수상태에 있는 사람이 370만명을 넘어서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시장원리에 입각한 구조조정은 실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은 정책대응이 매우 과감해야 한다. 경제 전반에 필요이상의 심리적 위축이 팽배한 상황이라 더욱 과감한 정책 대응이 요구된다. 경제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소비와 투자활동을 위축시키면 실제로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11년 전의 멍청한 짓만이라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 출자를 통해 금융기관의 대출 및 보증 여력을 확대해야 한다. 비상시국인 만큼 자본 확충을 통해 은행의 대출여력을 확보하고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대규모 출자를 통해 입안된 계획을 신속히 집행하여야 한다. 경제위기속에 맞은 새해, 이를 되받아치는 정부의 정책과 함께 국민의 분발이 함께 요망된다.
경인매일
경인매일
kmaei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