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불신 사회의 뿌리를 뽑아야
[덕암칼럼] 불신 사회의 뿌리를 뽑아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7.19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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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아빠, 나 휴대전화 고장 났어. 돈 보내줘” 일반 국민 대부분이 한두 번은 받아봤을 법한 휴대전화 사기 문자 내용이다.

이제 어설픈 조선족 말투는 외려 피해자가 농담으로 대응할 만큼 식상한 수법이고 점차 교활하고 치밀한 방법이 동원되면서 단순히 금전적 피해 그 이상의 불신 사회로 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휴대전화 고장 났다는 문자 메시지가 문자로 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가족의 목소리로 오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고, 이 같은 음성 메시지가 인공지능 딥페이크 음성합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AI로 조작된 점이라는 것이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제는 진짜 가족이 급할 때 연락을 해도 의심하거나 외면해야 한다는 결론인데 어디까지를 믿어야 하고 의심해야 하는지 그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창이 있으면 방패가 있다고 했던가.

다행히 특정인의 목소리를 딥 페이크로 모방한 음성을 탐지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내년 12월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처음 이런 방법이 사기 전화에 도용 되었을 때는 심각한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2019년 영국 한 에너지 회사가 최고경영자 목소리를 AI가 위조한 사기 전화에 이용당해 24만3,000달러를 송금하는 사기 행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사기에 이용되지만, 특정인에 대한 모함, 혐오, 비난 등 악의적인 방법이 적용된다면 그 피해는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전파, 확산하면 뒷수습은 어찌할 것인가. AI이든 아니든 이미 뱉은 말은 퍼지기 시작했고 남의 험담을 즐기는 일반적인 인간의 습성상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들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혹여 당사자가 극단적 선택이라도 했거나 치명적인 사고를 쳤다면 그 이후 사라진 범인은 누가 잡는단 말인가. 이제 보이지 않는 범죄의 도마 위에 누구든 올라갈 수 있다. 어제는 필자에게도 대한통운에서 배달 오류가 발생해 물품을 찾아준다며 실명확인을 요구하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링크하니 대한통운 물품 확인 창이 뜨고 순서에 맞게 입력하라는 주문내용이 떴다.

물론 이쯤 되면 전화 사기일 확률이 매우 높다. 또 얼마 전 뉴스에는 모바일 청첩장을 눌렀다가 1억 4천만원을 털린 사건이 보도 된 바 있다.

누구의 결혼식인지 확인하기 위해 클릭했지만 아무런 링크도 뜨지 않아 별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다가 갑자기 인증 문자가 수십 통 날아오더니 다음 날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A씨 명의의 보험사와 은행 등에서 1억4,000만원의 대출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인륜지대사의 통보마저 의심을 해야 하고 이대로라면 장례식장도 마찬가지이며 각종 축의금, 부의금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돈을 보내자니 의심되고 안 보내자니 큰 결례가 되는 것이고 망설이다 혼주나 상주에게 연락을 해봐야 알 수 있는 시대로 가고 있다.

전화 사기로 인출된 돈은 계좌에서 이체되는 순간 다른 계좌로 옮겨지고 해외 서버를 거쳤다가 명의를 도용당한 대포 통장으로 분산되어 사라진다. 이미 늦은 금전 회수에 경찰도 속수무책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일단 해킹해서 악성 프로그램을 깔고난 후 수습이 어려운 주말에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전화 사기의 피해자는 온라인에 취약한 어르신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름 똑똑하고 한가락 한다는 사회지도층이나 전문인들도 사기를 당했다. 최근 보도된 40대 의사 A씨가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라는 거짓말에 속아 40억 원을 사기 당한 사건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피해자의 속 타는 마음과는 달리 무슨 의사가 돈이 그렇게 많으냐는 비아냥까지 뒤따랐다. 해당 피해자는 검찰이 수사에 협조하면 약식 조사만 한다는 말에 의심없이 메신저로 전달된 링크를 눌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서 말려들었다.

더욱 교묘한 것은 피해자가 금융감독원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 계좌가 자금세탁에 사용됐다는 답을 받았고 이는 경찰이나 검찰·금융감독원에 전화를 걸어도 전화금융 사기 일당에게 연결되도록 애플리케이션이 설계됐기 때문이다.

빠져나간 40억 원은 이미 해외로 빼돌려져 찾을 수 없게 됐다. 통계를 보면 이 같은 기관 사칭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5월까지 발생한 전화금융사기 피해 7,363건 중 기관 사칭 사례는 4,515건으로 전체의 61.3%다.

이는 202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1만707건 중 3,787건으로 35.4%에 불과했던 점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늘어난 수치다. 다시 말해 기관 사칭이 잘 먹혀 들어 간다는 점이다. 사기 건수가 늘어나는 만큼 실제로 기관에서 업무적인 연락을 해도 사기범으로 단정하여 소통 자체가 안 된다는 점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가 다시 회복되려면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할지 답이 없다. 이제는 양치기가 늑대라고 소리쳐도 달려올 사람도 없을뿐더러 다수의 피해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지금의 사태를 방치한 사법부의 책임으로 남게 됐다.

걸핏하면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달리 방법이 없다면 피해자는 어디로 가서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사법부가 손들면 더 갈 곳도 없고 마냥 당하기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세금 모아 월급 주는 것인데 국민이 어디로 가서 하소연이라도 할 것인가.

경찰의 입장을 정리해 보면 인터넷 주소가 포함된 미끼 문자는 절대로 확인하지 말고 피해자가 걸고 받는 모든 전화를 전화금융 사기 일당이 가로채는 악성 앱을 주의하라는 게 전부다.

특히 구속 수사 등을 언급하며 수사에 협조하라고 압박하거나 보안 유지를 들먹이며 주변에 얘기하지 말라고 종용하면 전화금융 사기일 가능성이 크므로 경계하라는 게 전부다.

오늘도 경찰서 현관 정문에 내걸린 보이스피싱 주의 문구를 보며 과연 저 현수막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염려될 뿐이다.

대안은 있다. 현행법이 물렁해서 그렇다. 전화사기로 검거되면 과하다 싶을 만큼 10년 이상 장기 징역형을 내려 피해자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서로 믿고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아무도 못 믿는 불신사회를 만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적어도 일하지 않고 전화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심보부터 고쳐야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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