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투명 인간의 공포
[덕암칼럼] 투명 인간의 공포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08.16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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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반드시 이긴다는 뜻인데, 반대로 적을 모르면 가장 두려운 법이다.

알아야 걸맞은 대책을 세우든가 공격할 전략을 짤 수 있는데 상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으니 대책이 없는 것이다.

가령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국군이 공격할 것이고 조직폭력배가 대낮에 칼부림을 해대면 경찰에 신고해서 진압이라도 할 텐데 조직에 대한 계보도 없고 평소 예상했던 용의자도 아닌 경우 아주 난감하다.

마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해코지할 지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점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적, 그래서 묻지마 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치안 수치가 낮아지는 것이며 사법경찰에 대한 신뢰가 하한선을 모르고 추락하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묻지마 범죄 중 대표적인 것이 서울 신림동 흉기 난동과 성남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이다. 신림동 사건은 30대 조 모씨가 범행 직전 인근 마트에서 흉기를 2개 훔친 것으로 확인돼 작정하고 저지른 게 아닌지 의심의 여지를 사고 있다.

조 씨는 7월 21일 오후 2시쯤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여 1명이 사망했고 3명이 크게 부상당했으며 2시 20분쯤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불과 2주 뒤인 8월 3일 묻지마 살인은 또 한번 도심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대 초반 남성 A씨가 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 4명을 다치게 하고 성남 분당구 서현 AK플라자 백화점에서 아무 연관성도 없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흉기 난동을 벌였다. 백화점 내부에 있던 피해자 9명이 다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이 같은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 범죄 건수에 비하면 티끌만 한 일에 불과하지만 왜 이렇게 언론과 국민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 마치 식인 상어 2마리만 나타나도 해수욕장 출입이 전면 금지되는 것처럼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부터 10년간 발생한 살인사건을 모두 취합해 보면 살인으로 사망한 인원만 3,055명이고 미수에 그친 사건은 5,228건에 이른다. 도합 8,283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셈인데 통계상 한 해 평균 820명의 살인범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 것이다.

이 밖에 성폭력 사건도 해마다 증가하여 10년간 302,779명이 처벌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 해 평균 3만 명, 하루 83명씩 매일 구속되거나 집행유예, 벌금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잠재적 범죄 건수를 취합해 본다면 한국의 치안 수요는 좁은 국토 면적대비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태어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연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결론이다. 인간의 죽음에는 여러 경로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기 수명을 다한 자연사하는 것이고 다음이 질병으로 인해 제명에 살지 못하는 것이며 각종 사고로 상해를 입어 사망하는 것이다.

이 밖에 건강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며 2019년 13,799명, 2020년 15,191명, 2021년 13,352명, 2022년 12,720명 등 4년간 55,062명의 사람들이 삶을 포기했다.

이런 수치는 2023년 연말에도 적잖은 결과가 우려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묻지마 폭행이나 반사회적 범죄를 근절하는 방법은 없을까. 경찰을 배치하고 장갑차를 시내에 주둔시킨다고 예방책이 될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은 일시적인 요란이자 오히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우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형태이다. 당연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을 것이고 무엇인가 쌓인 분노나 이성을 잃을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병 환자인데 정신병은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고 사전에 징후가 있다면 국가가 부담하는 선에서 진료나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그것도 아니라면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예방을 해야 한다.

실제로 종교가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는 상당히 큰 편이다. 이 밖에 숨을 쉬지 못해 폭발하는 가해자의 환경에 숨쉴 수 있는 비상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미 경제적으로 폐인이 되고 막판에 몰린 사람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한 해 평균 8천 건이 넘는 살인사건, 3만 명이 넘는 성폭행사건, 1만 3천명이 넘는 극단적 선택, 이러한 사건의 발단에는 비정상적인 환경에 내몰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정도라도 살만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고급 자동차, 스마트폰, 온갖 가전제품의 발달로 손끝 하나 까딱 안 하고 살 수 있는 시대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대출이자로 허덕이는 아파트보다는 월세 없는 초가집이 훨씬 더 나은 것이고 배달음식에 길들여져 라면 하나 제대로 못 끓이는 수준보다는 절기에 맞게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도 해 먹을 수 있는 지혜를 기른다면 지금 같은 통계는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저축하고 꿈을 키우는 것보다는 당장의 쾌락과 유행에 휘말려 절제되지 않는 소비패턴이 문제이며 매스컴이 그러한 환경을 만들고 법 적용이 안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사회적 환경이 보편타당성을 갖출 때, 도덕과 인륜이 제 기능을 할 때 상호존중의 인성이 자랄 수 있는 것이지 지금처럼 입시 위주의 과당경쟁, 나의 행복보다 남의 불행에 쾌재를 부르는 이기적 심리, 자신과 상관없더라도 몇 푼의 보상금을 타기 위해 파파라치들이 극성을 부리는 행정기관의 안일한 정책이 화를 부르는 시초가 되는 것이다.

주차위반, 노래방, 음식점, 음주운전 등 거미줄처럼 촘촘한 법망도 문제지만 이를 악용하여 남의 인생이야 망가지든 말든 신고가 성행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반사회적 범죄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살기 힘든 나라가 되는 것이다. 약 20년 전 2003년 2월 18일에 대구 지하철 중앙역에서 발생한 대형화재 참사는 약 615억 원의 재산 손실에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다.

개인택시 운전을 하던 56세 김 모씨가 경제적 문제와 건강상 문제로 세상을 비관하고 지하철 열차 내에서 휘발유 방화를 한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돌아다닌다면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외쳐도 독백에 불과하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형식적인 상담소 운영보다는 현실에 맞는 대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민들이 세금을 낼 때는 그러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내는 것이지 이러저러한 명분으로 개인의 출세와 권력의 연임을 위해 쓰라고 내는 것이 아니다.

나열하자면 지면이 천장, 만장이라도 부족한 혈세가 사람 사는 세상 만드는데 편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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