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우리글 우리가 지켜야
[덕암칼럼] 우리글 우리가 지켜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0.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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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난 10월 6일 필자는 ‘국제 번역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말 우리가 지켜야 함을 강조한바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외래어로 점철된 일상대화에서 점차 실종되어 가는 우리말 속에 조금씩 퇴색되거나 희석되어 우리 고유의 단어들이 이제는 익숙해져 가는 심각성을 짚어본 것이다.

말과 글의 차이는 무엇일까. 말은 입에서 나와 귀로 들어가지만 글은 손으로 쓰여 눈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는 소리로 후자는 문자로 의사전달을 하는 것이다.

말은 순간이 지나면 흔적이 남지 않는 단점이 있는 반면 억양이나 감정을 섞어 감동을 더할 수 있는 것이고, 후자는 두고두고 뜻을 포함한 흔적으로 남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본디 글이란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면서 보다 편리하고 안정적인 의사를 남김으로써 역사적, 현실적, 미래지향적 발전을 꾀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문자다. 고대 그리스의 문자를 비롯해 중국의 한자, 일본, 태국, 유럽 등 모든 나라는 자국에서 통용되는 고유의 문자를 통해 국가를 경영하는 근본적 운영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문자 올림픽은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문자에 대한 과학적 가치, 기능과 역할 등을 채점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합리적인 대회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글이 문자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한다는 점은 모든 국가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한글이 가진 장점은 이미 한글을 배우려는 많은 국가들의 한류열풍에서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글이 국력과 연결되어 강대국의 글이 약소국이나 식민지 국가를 지배하는 경우 국제 공통어는 글의 가치를 떠나 당장에는 기성세대, 훗날에는 후손들까지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가령 중국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던 시절 조선은 신하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호의호식 하면서 여전히 한문이 양반들의 위상과 그들만의 의사소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남은 적이 있었다.

한글을 통해 백성들에게도 글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어 모든 백성들이 언문의 깨우침을 통해 눈을 뜰 수 있게 하려던 세종은 한글 반포시점까지 참으로 숱한 반대에 부딪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한문에 의존하는 조선은 한글을 사용하면서 초기에 어설프고 불편했던 일상속의 글들이 하나 둘씩 세종의 의지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세종대왕의 동상은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글이란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국가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항구, 터널, 교량, 도로 등 시설물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듯 글 또한 단순한 문화적 가치를 넘어 해당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자 국민들의 의사를 대표하는 문자다.

그러나 현실은 소중한 우리 한글을 줄이거나 변형시키거나 외래어와 뒤섞어 우리 고유의 글에 대한 개념 자체를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국민들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 국회에서 통용되는 말을 보면 가관이다.

물론 언론에서 이를 그대로 인용하여 글로 표현하니 방송의 자막에서도 그대로 정제되지 못하고 표현되는 것이다. 가령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란 말을 줄인 것인데, 여기서 로맨스는 영어고 불륜은 어원이 한문이다.

외래어와 한글의 혼합형에 그나마 줄이기까지 해도 국민들은 그냥 당연하듯 같은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한다. 섞어도 되는 말이 있고 그래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좁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어투나 사투리는 있어도 근본적인 한글에 대한 개념은 같다.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는 다소 억세도 말을 그대로 옮겼을 때 통용되는 것이며, 경상도와 전라도는 단어에 따라 의사소통이 불가할 만큼 다르지만 이 또한 한글로 옮기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수천 년 중국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다 우리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세종의 한글 창제가 뭐 그리 부끄럽고 숨길일인지 현재 사용하는 말은 외래어 안 섞으면 촌스러운 것이고 글은 영어 안 섞으면 수준이하로 보는 것이니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필자가 지난 6일 ‘국제 번역의 날’ 강조한 우리말의 실종현상에 대해 개가 고양이 말을 따라하다 보면 당장은 몰라도 개가 낳은 강아지는 야옹거리며 살게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글 또한 마찬가지다.

간판, 카톡의 문자, 도로 표지판, 영어를 빼고 나면 글이 되지 않는 문구들이 많다. 한때 국권을 잃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36년간 일본어와 일본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시절은 그렇다 치자.

멀쩡한 나라에서 국권을 회복하고도 우리글의 귀함을 알지 못하는 현 세대의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아둔함은 어떻게 회복될까. 중국에서 일본으로 우리말과 글이 시련을 겪었다면 지금은 미국의 그늘에서 영어로 점철된 우리말과 글이 점차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설마 하는 독자들이라면 지금 아이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단어를 잠시만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10마디라면 적어도 5마디는 영어로 통용되고 있으며 이같은 비중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어제는 제577돌을 맞이하는 한글날로써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한 날이다. 현재는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국민들이 한글에 대한 의식함양을 높이기 위해 정한 날인데 북한에서도 이날만큼은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을 5대 국경일로 정해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반 가정이나 단체에서 이를 실행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냥 빨간 글씨에 노는 날이다. 지난 토요일을 포함해 3일간 내리 쉴 수 있는 날에 불과하다.

정부에서도 어제 온갖 행사를 다 벌이고 포상과 기념식이 진행됐다. 한글날 뿐이다. 한글날이 지나면 다시 잊고 외래어로 도배된 현수막과 각종 선전문구들이 판을 칠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후보들의 외래어 사용은 도가 넘칠 정도다.

냄비속의 개구리가 점점 뜨거워지는 온도를 망각하고 결국에는 흐뭇하게 웃으며 삶아져 죽는 것처럼 우리말도 그렇게 조금씩 실종되다 보면 미국의 언어와 글의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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