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시월의 마지막 밤
[덕암칼럼] 시월의 마지막 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0.31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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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해마다 이날이면 같은 제목의 글을 쓴다. 물론 내용은 해마다 변화가 있고 이슈가 있으니 달라지겠지만 어쨌거나 가수 이용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진 날임은 틀림없다.

예년에도 그랬듯이 거리에는 추풍낙엽이 운치를 더하고 스산한 초겨울을 앞둔 시점이라 혼자인 사람에게는 더더욱 고독이 스며드는 날이다. 세월이 좋아 따뜻한 방에서 영화를 보거나 배달 음식으로 맛집을 고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정작 행복의 정점을 찍은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지난 시월은 참으로 복잡한 일들이 많았다. 먼저 국회에서는 인사청문회와 대정부 질문, 본회의장에서 여야가 침을 튀기는 논쟁이 당쟁으로 번져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스포츠 부문에서는 9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린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 일본에 이어 금 42, 은 59, 동 89로 총 190개의 메달로 3위를 기록하며 국위를 선양했다.

외교 부문에서는 대통령이 세계 각국을 누비며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쳤지만, 야당에서는 성과보다 빈번한 일정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리전 양상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면전으로 이어졌고 사상자는 국제사회의 어설픈 구호로 인해 속수무책 늘어났다.

무엇보다 서민경제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자영업자들의 한숨 소리에 땅이 꺼질듯한데 공무원이나 대기업, 공기업의 직원들은 평균 12일간의 추석 연휴에 살판이 났다. 갈수록 빈부격차는 증가하고 경제적 잣대로 평가되는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달 전국에서 문을 닫는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10개월 연속 1천 곳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들의 대출 시장도 문턱이 높아져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졌다. 주요 저축은행은 10명 중 1명만 대출이 가능할 정도로 대출 문턱이 높아졌다.

돈이 씨가 말라가는 가운데 일반 대부업조차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이자율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급전을 구하지 못한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했다. 막판에 몰린 서민들의 선택은 범죄의 유혹과 극단적인 경우뿐이다.

저축은행은 대출 승인이 10%대 수준으로 내려왔다며 대출 심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추세라고 말했다. 돈은 돌아야 하는데 멈추면 돈이 있는 사람은 버티더라도 없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악재다.

사채업자 또한 계획대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은행보다 허술한 담보 체제 속에서 일명 돈을 떼이는 확률이 높다 보니 인건비 등 차 떼고 포 떼고 현 법정 최고금리인 연 20%에서는 영업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치솟은 대출금리에 속앓이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시절 이래저래 온갖 수당으로 버티던 것이 이제야 그 후유증의 막판 신음을 하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폐업은 올해 8월까지 법원에 접수된 파산신청 건수만 하더라도 1,034건으로 작년보다 54% 증가했다.

버티다가 손을 놓는 폐업도 쉬운 게 아니다. 건물주로부터 원상복구 하라는 통보에 망한 것도 속상한데 기존의 시설물을 다 치우고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밀린 세금도 내야 하며 종업원들의 월급과 건강보험료도 마무리해야 한다.

그만둔다고 현실적으로 편하게 손 뗄 수 있는 게 아니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에 대통령이 참석 유무가 화두가 됐다. 한쪽에서는 야당이 주최하는 행사라 하고 또 한쪽에서는 참사로 인해 슬픔에 잠긴 유가족을 두 번 아프게 하는 대통령이라고 원망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마평부터 총선경쟁이 가시화되면서 국민들의 민생은 두 번째로 밀려난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간의 단식을 무사히마치고 국회에 복귀하자 한때 반기를 들었던 소신 의원들이 수박이라는 모욕 속에 갈등의 길을 걷고 있고 여당에서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로 당 대표를 제외한 집행부가 모두 교체됐다.

때를 맞춰 이언주 의원의 기자회견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당쟁 중인 상황에 직언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적과 동침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소신보다 승패가 먼저라는 분위기다. 어쨌거나 서울 여의도는 시월 한 달 난리가 났었다.

앞서 어필한 것처럼 상대 당을 깎아내리기보다 국민에게 먼저 사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국회 출입을 하며 개인적으로 만나 본 의원들은 제각각 수준이나 실력이 매우 우수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마이크만 잡고 카메라만 돌아가면 돌변한다. 소신보다 당쟁이 우선이고 고함을 질러야 위신이 서는 것처럼 말싸움의 전사가 된다. 이미 상대 당 의원들이나 국무위원들에 대한 인격이나 위신은 온데간데 없다.

정곡을 짚어 인정하게 한 다음 사과를 이끌어내면 곧 바로 사퇴를 요구한다. 증인으로 나선 사람은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에게 말 멱살 잡히지 않으려고 이래저래 빼고 때로는 우격다짐으로 버티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자화상. 겉으로는 화려한 야경의 주말이면 차량정체가 이어지고 전국 명소에는 인파가 몰리고 인천국제공항에 줄서기가 장사진이다. 하지만 고층 건물 대로변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면 초라한 한옥에 허스름한 식당들이 즐비한 게 현실이며 그나마 대도시는 적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공동체의 슬럼화는 빠르게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대로 서울, 수도권 집중현상이 이어진다면 30년 후 일본의 현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다가오는 11월만큼이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사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적어도 시월은 서민들에게 힘들었다. 11월에는 조금이라도 달라질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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