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재의 문학산책] 서정주와 봉산산방(蓬蒜山房)
[박상재의 문학산책] 서정주와 봉산산방(蓬蒜山房)
  • 박상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 kmaeil86@naver.com
  • 승인 2023.11.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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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게/그러나/아조 섭섭치는 말고/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그러나/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만나러 가는/바람 아니라/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1~3연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는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서당에서 공부하다가 1924년 줄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1929년 졸업했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기 때문에 같은 동네에 살았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애비는 종이었다."는 이 점을 의식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 
  
1929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1월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서로 연행된 뒤 풀려난 적이 있다. 1930년 광주학생항일운동 1주년 기념 학생운동을 주모한 혐의로 구속되어 퇴학당한다. 1931년 고향의 고창고등보통학교 2학년으로 편입했으나 일본 교육과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 동맹 사건을 주동해 권고자퇴를 당하게 된다. 
  
당시 서정주는 만주나 러시아로 갈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의 돈을 훔쳐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서울에 눌러앉는다. 이때 많은 책을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곳을 방랑하며, 스승으로 모셨던 승려 석전 박한영을 비롯해 작가 김동리, 함형수, 이상 등과 만나 교류했고 특히 오장환과는 각별한 우정을 쌓았다. 1935년에는 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당시 교장을 지냈던 박한영의 권유로 입학했으나 1년 뒤 자퇴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같은 해에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을 창간했고, 1938년 방옥숙과 결혼해 슬하에 2남 5녀를 두었다. 1941년에는 「자화상」, 「화사」, 「문둥이」 등의 시가 수록된 첫 시집 『화사집』을 출간해 문단의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서정주는 오장환, 이용악과 함께 한국 시단의 3천재로 불리며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1940년대에 친일적 활동을 하는 오점을 남겼다.
  
해방 이후 1946년 김동리, 조지훈, 곽종원, 박목월, 조연현 등과 함께 좌파문인단체 조선문학가동맹에 대응키 위해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창설해 시 분과위원장을 맡았고, 현실 참여 문학 대신 순수시를 택했다. 이후 동아일보 문화부장, 초대 문교부 예술과장을 거쳐 1949년 초대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5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창립회원으로 추대되었다. 1948년 『화사집』의 세계와는 사뭇 다른 「견우의 노래」, 「귀촉도」, 「푸르른 날」 등이 수록된 두번째 시집 『귀촉도』를 출간했고, 이어 1956년 「무등을 보며」, 「국화 옆에서」, 「추천사」 등이 수록된 세번째 시집 『서정주시선』을 출간해 시인으로서 크게 주목받았다.
  
1961년에는 「꽃밭의 독백」, 「무제」 등이 수록된 네번째 시집 『신라초』를, 1968년에는 「동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등이 수록된 다섯번째 시집 『동천』을 출간하면서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평가받게 된다.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독특한 언어 구사력으로 표현한 서정주의 시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또한 박재삼 등 뛰어난 시인을 발굴하고 오랫동안 교수직에 있으면서 시인 양성에 노력을 쏟기도 했다. 
  
미당은 관악구 남현동에 1970년부터 2000년까지 살았다. 시인은 이 집을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됐다는 단군신화에서 따온 ‘봉산산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정주는 관악산에서 들려오는 뻐꾹새 소리와 소쩍새 소리 듣기를 즐겼다. 200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이 집은 미당이 별세한 뒤에 한동안 방치했다가 2012년 3월 '미당 서정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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