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삶의 이정표가 수능일까
[덕암칼럼] 삶의 이정표가 수능일까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1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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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대한민국에서 삶의 성공 여부는 무엇으로 판가름될까. 태어나서 어린이집으로부터 시작된 배움은 초·중·고 12년을 거쳐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을 치르며 그렇게 입학한 대학이 결국 사회진출의 이정표가 되어 좋은 직장 또는 쌓은 스펙만큼 대우받는 전문직에 종사하게 된다.

오늘은 전국 시험장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다. 수능시험에 방해가 될까봐 항공기 소음을 줄이기 위해 이·착륙 시간도 바뀌고 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해 공직자들의 출근 시간도 늦출 만큼 온 국민이 합심하는 날이다.

11월 16일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 과학, 직업 탐구, 제2외국어 등으로 과목별 시험이 오전 8시 40분부터 시작되는데 오전 8시 10분이면 입실이 종료된다. 기다리는 30분은 지난 12년간의 모든 노력이 결론지어지는 만큼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시간이다.

항상 그랬듯이 수능 문제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신청하는 시간은 오는 20일까지다. 정답 확정은 28일 결정되고 최종 결과는 12월 8일에 공개된다. 해마다 이맘때 치러진 수능은 지난 1994학년도부터 실시됐으니 대략 30년 동안 되풀이됐다.

시험장 입구 정문에는 어김없이 엿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어떤 학부모는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자녀의 우수한 성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같은 시험이라도 상대평가에 따라 미래가 결정지어지는 만큼 내 자식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다른 수험생이 더 우수한 성적이 나오면 낭패가 되는 것이다.

살벌한 논리겠지만 남이야 어찌 되든 내 자식만큼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하늘의 심술인지 수능 때만 되면 날씨가 매섭다. 다행히 올해 수능 일에는 기온은 많이 낮지 않지만 가을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려 수험생들이 위축되지 않길 바란다.

수험생 출신학교 후배들의 열띤 응원전이 연례행사처럼 시험장 앞에서 벌어진다. 30년 동안 같은 시험에 대학 진학의 통로가 대동소이한데 왜 대한민국 대학은 전 세계 좋은 대학의 문턱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까.

교육부에 편성된 막대한 예산의 효율성은 누군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대로라면 12년 동안 공부하고 진학한 대학이 취업 이외의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난다. 점수에 맞춰 원치 않은 대학에 진학하고 보면 장래가 암담하고 다시 재수해서라도 길을 제대로 찾으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출제위원들의 자격 여부와 킬러문항에 대한 국민적 공분도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며 오답 논란도 어김없이 수험생들을 불안하게 한다. 간혹 불수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상보다 시험이 어렵게 출제되면 정시 지원 전략을 짜려는 입시생들을 긴장시킨다.

사실 수능은 수험생이 치르지만 함께 준비하는 사람들은 학부모, 담당 교사, 학교 관계자와 선·후배들, 특히 큰소리치고 고액 과외를 지도한 과외 교사와 일선 학원 강사까지 다양하다. 이날을 위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심지어 정신적 안정을 취하기 위해 온갖 좋은 약재와 향수까지 준비한다.

유명한 사찰이나 교회는 물론이고 성당, 토속신앙인 무당집까지 모두 신을 통한 기도가 병행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평소 내신 성적이 아무리 좋았더라도 도움 되지 않는다.

1점이 평생을 좌우하는 숫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적의 잣대는 냉정하다. 그래서인가 농어촌 특별 전형은 일반 전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내신과 수능 성적으로도 합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도시 주변의 읍면 지역 고교에는 도시 출신 학생들이 위장 전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험생 입장에서 실질적인 주의사항도 있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이 듣지 말아야 할 수능 금지곡에 대한 내용인데 이 곡을 들으면 계속해서 귓가에 음이 맴돌면서 집중력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심하면 짜증을 유발한다는 여론이다.

예로 들면,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가수 비와 태진아가 함께 부른 ‘라 송(La Song)’ 등이 있다. CM송으로는 새우깡이나 여명808, 오로나민C가 거론된다. 과학적 근거가 없더라도 빠른 템포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한번 듣고 나면 곡의 중독적인 특징으로 인해 귓가에 계속 맴돌면서 자기도 모르게 음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일명 ‘귀벌레 증후군’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곡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치러지는 수능이 삶의 지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건강한 몸으로 알고 있는 만큼 잘 치렀다면 좋겠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거나 충분히 풀 수 있었던 문제를 놓쳤다면 더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수능시험 문제가 아니라 수능이 삶의 전부도 아니고 지표도 아니며 미래에 대한 보증서도 아니다. 운이 좋아 제대로 찍어서 예상 밖의 성적을 거뒀다고 그리 행운도 아니다. 사람의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것이며 지금까지 대단한 위인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기업 총수도 대통령도 구국의 영웅도 마찬가지다. 수능이 끝나면 그동안 미뤘던 법의 규제와 함께 긴장감도 풀린다. 일명 고삐리들의 탈출이 시작된다. 주민등록상 미성년자를 벗어났으니 술집 출입과 편의점 담배 구매가 가능하고 시험을 마쳤으니 해방감과 함께 일탈의 여지가 광범위해진다.

자칫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으니 매사에 신중하고 각자의 몸과 마음을 잘 가다듬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수능은 삶의 아주 짧고 간략한 부분일 뿐이며 대학의 첫 출발일 뿐이다. 그리고 그 대학 나와도 사회라는 약육강식의 첫 출발일 뿐이며, 좋은 대학이 삶의 보증수표는 더더욱 아니다.

간혹 시험 망쳤다고 죽네 사네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젊음보다 더 확실한 가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