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하늘의 별이 되다
[덕암칼럼] 하늘의 별이 되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1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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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철학과 신념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와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마당을 쓸어도 한 사람은 청소하면 얼마를 받을까 궁리하지만, 생각에 따라 지구를 깨끗하게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빗자루를 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이지만 지리적으로나 민족의 인성이 남을 침략하거나 먼저 시비를 건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인가 걸핏하면 위·아래에서 수천 번의 외침을 받은 바 있다.

공통적인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국의 군대까지 끌어들여 권력을 유지해 오던 사람도 있었다. 일신의 영달과 사리사욕을 채우려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고 정작 자신과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게 현실 아니던가.

“애국자 집안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파는 3대가 흥한다”는 말도 있었다. 목숨은 누구나 소중하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혀도 아픈 법인데 하나 뿐인 자신의 생명을 구국 결단으로 던진다는 것은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 옮기기에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함에도 그 어려운 일을 망설이지 않고 실행했던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은 현세대들이 호강하며 살 수 있었던 바탕이자 정확한 원인이다. 오늘은 ‘제84회 순국선열의 날’이다. 서울 용산, 대전 등 국립묘지를 비롯해 도처에 있는 선열들의 충혼탑과 묘지를 찾아 정중히 예를 올리는 날이다.

필자는 인천 영흥도 군함을 지키던 故 변승평 명예함장의 예를 들고자 한다. 일명 엑스레이 작전이라는 인천상륙작전의 모태를 영화화하고자 많은 노력을 애쓴 분이다. 비록 전쟁의 포화 속에서 총격전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세대들에게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미와 6·25 전쟁에서 극적으로 전세를 바꾼 과정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약 1년 전부터 시작된 엑스레이 작전의 영화화, 평소 참수리호의 폐함을 지키며 인천 영흥도의 관광 안내 가이드 역할을 하던 故 변승평 명예함장은 청년 못지 않은 열정으로 한국영화인협회 인천광역시 옹진군 지부를 창설, 회장을 역임하는 과정에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열정을 보여 준 바 있다.

가벼운 교통사고 이후 수일간 입원하는 중에도 곧 퇴원하면 영화사업에 본격적인 탄력을 붙이겠다고 활발한 모습을 보인 지 3일 만인 지난 11월 3일 유명을 달리했다. 누구 하나 알아준 사람도 급여도 없이 사시사철 폐선이 된 군함을 지키며 인천상륙작전의 의미를 관광객에게 매번 같은 내용으로 안내하던 애국의 열정이 있었다.

군함이 소재한 바로 앞 충혼탑에서 전쟁 당시 참혹한 죽임을 당했던 국군의 전쟁스토리를 사실감 있게 설명했던 애국자였다. 필자가 겪어보고 많은 대화를 나눠본 그의 순수한 마음은 그 어떤 바람과 생색도 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부심에 젖어 있었다.

이제는 그 자리가 비어있다. 봉고 차량에 군가를 틀어놓고 인천상륙작전의 내막이 담긴 단편 영화까지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내용을 싫증 한번 내지 않고 관광객들에게 설명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혹여 관광객이 군함 앞에서 담배라도 피우면 흡연 금지를 안내하면서 성스러운 곳임을 강조했다. 순국선열들의 정신과 희생이 고스란히 담긴 장소라며 성역을 지키는 자부심에 마냥 행복해했던 명예함장이었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지키는 업무를 인천 옹진군청 사업으로 제안할 예정이다. 전함에 올라 기념사진만 찍던 관광객들은 고인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전함 곳곳에 청소와 시설물 관리까지 고인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다.

평소 만난 그의 지인의 전언에 의하면 이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포화가 없어야 한다며 어릴 적 듣고 본 전쟁의 참화를 엊그제 일처럼 들려주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인천 영흥도의 한국 정보군인들의 정보가 아니었더라면 오천분의 일 이라는 확률에 대해 감히 추진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지금의 한반도 지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천상륙작전이 성공리에 끝났고 한반도는 다시 38도선을 기준으로 두 동강났다. 인천 영흥도 엑스레이 작전의 기여한 공이 있다면 현세대들에게 그들의 희생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 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동화 속 옛날이야기처럼 구수하게 들려준 故 변승평 명예함장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인천 옹진군청뿐만 아니라 국가보훈처에서도 그의 숨은 공로와 노력에 대해 기억하고 기념비라도 세워야 한다. 총성은 그쳤지만 사실상 북한과 남한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반도 위기설의 중심에 서 있다.

국가를 위하는 마음은 엄청난 공을 세우고 동상이 세워져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실천과 진실된 애국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당연하듯 국민들에게 전해질 때 너도나도 나라의 소중함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것도 행하지 못하는 사고방식이 무슨 나라를 살리고 구한답시고 나설까. 누구나 가야할 길이지만 열정과 훈훈한 심성이 그윽한 그의 죽음 앞에 안타까움이 큰 것은 나이는 숫자라며 호탕하게 웃던 모습이 미처 다하지 못한 단편영화의 마침표를 보지 못하고 떠났다는 점이다.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에 협회를 꾸려가며 동분서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는 편안한 곳에서 쉴 수 있겠지만 떠난 빈자리의 공허함은 그 어떤 장례보다 더 엄숙하고 고귀하게 치러졌다.

그가 다하지 못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관한 ‘엑스레이 작전’은 남은 자들의 숙제가 됐다. 필자 또한 부회장을 역임하며 보필에 미숙했던 점들이 미안함으로 남았다.

지면이 한정된 관계로 독자들은 ‘다이너마이트 작전’ 또는 ‘엑스레이 작전’을 검색해 전쟁의 역사를 영화 보는 재미로 볼 게 아니라 죽음이 두려운 공포 속에서도 자신을 희생한 순국선열들의 뜻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