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공익에 대한 신뢰는 철저해야
[덕암칼럼] 공익에 대한 신뢰는 철저해야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1.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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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난 17일 오전 9시 20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필요한 구비서류를 발급받고자 방문했는데, 약 10분 전부터 전산망이 다운되어 발급이 불가하다는 안내와 함께 언제 복구될지 알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물론 서류 미비로 업무적 차질은 물론 당일 일정은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전국이 그렇다는 내용의 변명으로 통용되지는 못했다. 아마 이날 유사한 일을 겪게 된 국민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라는 추정은 저녁 뉴스 시간에 제대로 확인됐다.

전산망 다운이 하루 이틀 늦춰져도 괜찮다면 존재가치는 그만큼 하락할 것이기에 공공기관 전산망 마비로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줬다. 소위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위상은 하루아침의 기본적인 서류조차 뗄 수 없는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이틀 동안 멈췄던 전산망은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24가 임시로 재개했다. 문제는 원인파악이 정확히 안 됐다는 것인데 이유를 모른다면 같은 일이 또 반복되어도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할 것인가.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지자체 공무원이 접속하는 전산망인 ‘새올'은 정상화되지 않고 있다. 일반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서류발급 전산만 겨우 수습되었을 뿐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직속기관은 여전히 우왕좌왕이라는 게 관계기관의 답변이다.

문제는 행정 전산망이 아니라 국방 시스템이나 KTX 또는 차량의 위치를 전제로 교통정보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먹통 된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설마 하는 방심은 금물이다. 전면 재검토해서 잠시 불편을 참으라는 인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불편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 정부라는 공공기관의 전산망이기에 더욱 그 중대성과 신뢰성은 지켜져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는 분야별 전문가가 있다. 은행, 국방, 주식, 긴급을 요구하는 기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다른 민간업체가 관리하고 있고 그 업체가 온전하다면 다행이겠지만 부도나거나 폐업한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또 관리하던 직원이 퇴직하거나 설계 도면이 급변하는 상황과 동반하여 업데이트 되지 못했다면 그로 인한 문제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재 국내 모든 인터넷 전산망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70년대부터다.

그전에는 모두 수기로 작성하거나 타자로 쳐서 일일이 입력하는 수준이었으니 짧은 시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낸 셈이다. 뒤늦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공무원이 로그인 할 때 그것을 검증하는 경로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단순한 경로 외에 다른 방법으로 대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국토 면적 대비 인구밀도도 높고 날로 폭증하는 민원에 대비한 정부는 전자정부의 우수성과 편리함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6월 24일을 전자정부의 날로 지정하고, 2018년부터 매년 기념식을 개최한 바 있다.

올해로 6번째였다. 디지털플랫폼정부 미래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행안부 담당 부처다. 인공지능·데이터로 만드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정부' 비전 선포식도 열렸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한 곳에서 한 번의 신청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민이 요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서비스를 먼저 알려 드리는 등 디지털플랫폼정부를 구현해 더 좋은 세상을 열겠다고 밝혔다.

실현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혜택 알림이, 구비서류 제로화, 초거대 공공 AI, 디지털트윈 등 16개 중점 과제로 전환한 바 있다. 일반 국민들도 모르는 전문 분야에 또 얼마나 많은 예산을 투입해 관련 업체들이 호황을 누릴지 알 수 없으나 첨단 선진국으로 가야하는 탑승료라면 지출조차 막을 수 는 없다.

문제는 이번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마냥 민간업체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안전, 예방 차원에서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민간업체라고 전혀 문제가 없다고도 볼 수 없다.

지난해 10월 15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카카오톡과 카카오택시, 카카오 페이 등 카카오 주요 서비스들이 최대 127시간 33분 동안 멈춘 바 있다.

물론 첫 번째 피해자는 카카오겠지만 한시적 먹통으로 얼마나 혼란이 가중되었던가. 당시 카카오는 화재 피해에 대한 보상책으로 소상공인의 매출 손실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현금 보상을 하고, 카카오톡 전체 이용자를 대상으로 이모티콘 3종을 지급했다.

처리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일주일 뒤 서민민생대책위원회와 택시 기사, 대학생, 직장인 등 소비자 5명은 카카오의 대응이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며 카카오를 상대로 위자료를 1인당 100만 원씩 총 6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6월 카카오와 손해배상 청구인들 양측의 서면 의견이 최종 제출된 후 8월 서울남부지법 민사32단독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선고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공익을 전제로 운영되는 시스템은 공공성을 지닌 만큼 철저해야 한다는 의미다.

언제부턴가 행정복지센터 민원실은 한적해졌다. 무인발급기가 직원의 업무를 대체하고 일반적인 서류발급도 인터넷으로 모두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AI 로봇이 사람의 생각까지 모두 읽어내고 필요한 상담까지 해주는 시대가 됐다.

전문가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도 있지만 생각하는 로봇이 감정까지 갖추게 된다면 최근 벌어진 셧다운 상태는 예고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문명의 발달도 좋지만 관리하는 대안도 병행되어야 한다.

달리기만 하는 페달만 있고 멈추거나 조절할 수 있는 제동장치가 없다면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 노선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지금은 하루 이틀 단순한 불편이었지만 모든 것을 컴퓨터에 맡겼다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어떡할 지 우려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