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덕암칼럼]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3.12.0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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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자연스럽게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과 안 변해도 될 일을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위해 바꾸는 경우이다. 가령 시내 곳곳의 시정 슬로건 간판이 새로운 시장이 당선되면 모두 바뀐다.

예산이 얼마나 들지는 무관하다. 또 시정 업무 과정에 전임자의 흔적 지우기에 몰입한 당선자에게 발 빠르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온갖 아부와 간언으로 시장님 치적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승진의 지름길이기도 하고 그래야 남은 4년 동안 무탈하게 예산확보도 가능하기에 그렇다고 치자.

오래 전 경기도 A모 시가 출향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지역적 특성상 출향인들 표만 얻으면 차기 대선도 무난하리라는 계획하에 추진한 사업이 있었다. 이른바 내 고향 장터 개념이었는데 당시 필자는 몇 번이나 쓸데없는 전시행정으로 물류 시장의 기반을 흔들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었다.

요즘 말하면 로컬푸드 같은 것이다. 이미 해당 분야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소매시장까지 오랫동안 상인들만의 영역이었고 저렴하게 판다고 생색도 내고 출향인에게 표까지 얻을 수 있으니 1석 3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담당 부서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역 신문은 물론 지방일간지까지 대대적으로 홍보해 누가 보면 마치 대단한 영웅처럼 부각된 적이 있었다. 물론 해당 분야 물류 시장의 혼란만 가중된 것은 물론이고 얼마 못 가서 해당 사업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지금까지 그러다 중단한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생색만 냈지 당장에 표심을 얻을 수는 있더라도 결국에는 그 예산은 일반 시민들에게 전가된다. 누가 봐도 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상복이 터진다. 나중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보면 상을 주는 단체에 시민 세금으로 편성된 홍보비가 책정되어 있으니 이 또한 시장님을 연호해 가며 딸랑거리는 일부 속 빈 강정들의 합창인 셈이다.

비단 농수산물뿐만 아니라 생색을 낼 수 있는 분야면 가리질 않는다. 그것이 교통이든 교육지원금이든 청년들에게 용돈을 주든 관계치 않는다. 심지어 임산부에게 택시비를 지원해 준다거나 구직·구인 시장에 뛰어들어 무료로 연결하게 해주는 전시행정도 서슴없이 진행했다.

일반 시민들은 절대로 모른다. 그렇게 전시행정으로 인공 소멸한 시장 중에 필자가 운영했던 생활 정보신문도 포함됐다. 지난 대표가 보급해 배달한 기간까지 약 34년간 발행해 오던 생활정보신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시에서 시민들에게 생색내며 추진한 사업이 유료로 신문을 보급했던 해당 분야 입장에서는 날벼락인 셈이다. 물론 많은 분야에서 유사한 현상이 생기지만 같은 오류를 반복하며 시정하지 않으려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반대로 자연 소멸은 지역발전과 시민들의 복지와 편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가령 어두운 거리에 언젠가부터 환한 가로등이 생겼다든지 험난한 비포장도로가 아스팔트로 변해 다니기가 좋아졌다든지 하는 경우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물론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국도의 운치는 사라졌지만 이는 당연한 소멸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안 해도 될 일을 단체장의 부각을 위해 추진하는 경우, 누군가는 직업을 잃고 시민 편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짹소리도 못 하고 사업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돌이켜 보면 조선시대부터 이미 간신들의 아첨은 대동소이했다. 고을 원님이 행차하면 큰 소리로 “물렀거라”를 외치며 자신이 원님보다 더 거들먹거리는 이방이 있었다. 요즘처럼 안 해도 될 일을 추진해 사또의 신임을 사고 일반 백성들이야 골탕을 먹든 말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또 입장에서는 당선되면 입사일 최고 신참이고 직책은 최고참이니 수십 년 해묵은 고참 공직자들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는 터, 마치 궁궐에서 임금이 대신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세월이 흘러 2023년에도 마찬가지이며 아마 2040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가 다 유사하겠지만 적어도 거둬들인 세금을 쓸 때는 이리저리 상황을 봐가면서 적시적소에 써야지 덮어놓고 아첨꾼들의 간언에 넘어가 백성들이야 피해를 보든 말든 사업을 추진하면 세월이 흘러 그 책임이 당사자에게 돌아갈 일이다.

지금까지 4년짜리 시장·군수를 참으로 많이도 봐왔지만 안 해도 될 일을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결국 예산만 낭비한 사례가 많다. 권불십년이라 했다. 몇 천년 할 것처럼 나대지만 임기가 끝나면 지나가는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

재임 기간과 퇴임 이후 청사를 지나가도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단체장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 같은 직언에는 대통령도 포함되는 것이다. 지역의 이장·반장에게도 포함되는 말이다.

예컨대 이번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를 두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너무 간신배들에게 많이 의존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이 전 대표의 말에 의하면 대통령에게 정보가 전달될 때마다 화를 내서 내쫓으시니까 누구도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정치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소중한 혈세를 특정인의 생색내기로 편성되는 순간부터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해야 할 일이라면 어떤 경우라도 참고 견디며 수행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리더가 길을 잘못 가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충신도 필요하다.

말을 안 해도 될 때 하는 것은 죄가 작으나 해야 할 때 안 하는 것은 참으로 그 죄가 크다 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직필은 사람의 박해를 받고 곡필은 하늘의 천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