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입춘대길 건양다경
[덕암칼럼] 입춘대길 건양다경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2.05 0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어제 2월 4일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이었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봄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 입춘첩을 써 붙인다.

독자들도 흔히 보듯 한문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글자를 써서 각 가정에서 대문 기둥과 대들보·천장 등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과거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라고도 한다.

그러한 풍습이나 바람은 세월이 흘러 현대사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니 2월 4일 오후 17시 26분에 맞춰 붙여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문구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며 다른 문구들도 많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이라 하여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는 뜻도 있고 ‘수여산 부여해’이라 하여 산처럼 오래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길 바라는 뜻도 있다.

이 밖에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이라 하여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는 문구도 있다. ‘거천재 래백복’이라 하여 온갖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는 뜻도 있다. 그만큼 어려운 겨울이 가고 다시 활기를 찾자는 의미이다.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이라는 말은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라는 내용이 이를 의미한다. 우리는 아니라 하면서도 요행이나 행운을 바란다. 운이란 각자의 노력에 우연히 더 잘되는 기운을 의미한다.

사람이 크게 되려면 돈벼락과 인맥이 금맥이 되어 살아가는데 더없이 행복할 수 있다. 반대로 운이 없다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아무리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쳐도 하는 일마다 악인을 만나 사사건건 꼬이는가 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유행하는 전세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사소한 욕심이 화근이 되어 전화사기에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다가오는 재앙이나 불행, 어둠의 그림자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그림자가 길어지듯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다만 이러한 이치를 문명이라는 과학적 편익에 기대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대자연속에서 사소한 헛기침에도 무력한 존재다. 미약하기 그지없고 언제 어떤 질병과 사고로 유명을 달리할 지 모른다.

그러함에도 마치 몇천 년을 살 것처럼 웅장하고 원대한 계획을 짜는가 하면 가진 돈과 권력을 미처 다 써보지도 못하고 수명을 다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엊그제도 미군이 이라크를 공격해 전운이 감돈다.

2024년 현재의 대한민국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얻었고 가게마다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문명의 혜택을 얻었을까. 그런 환경 속에 인력감축과 AI가 사람을 대신해 온갖 일들을 처리하면 정녕 인간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스스로 자생적 가치를 잃지는 않을까.

한민족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미풍양속과 절기에 따라 24가지로 구분해 놓은 대자연의 흐름이 그러하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정치적 파란 속에 백성들만 피폐한 삶을 살고 다시 총선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민생이라는 단어는 쑥 들어갈 것이다.

가난하고 힘든 국민들의 삶을 볼모로 삼아 정작 자신들은 온갖 특혜와 경제적 안정을 누리며 행복의 4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지난번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다녀간 정치인들을 보며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기자들과 사진만 요란하게 찍고 간 것을 보면 저 좋은 소재를 왜 외면할까 싶다.

이미 안정권에 들어선 사람들은 한 달 정도 돈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깔끔하게 한 달치 월급이라도 상인들을 위해 기부하고 함께 둘러앉아 컵라면이라고 먹고 오는 실천이 뒤따른다면 민심은 어디로 갈까.

앞서 거론한 입춘 문구 중 유난히 부모의 장수를 위하고 복을 기원하는 내용들이 많다. 그 잘난 인간들이 뭐가 부족하고 불안해서 이러한 바람의 문구들을 지금도 적어 붙이는 것일까. 연약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간절한 기도는 때로 예수님을 찾고 부처님을 찾는가 하면 어느 민족은 알라신에 기대기도 하고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달을 보며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사람처럼 강하고 잔인한 종족도 없지만 반대로 사람처럼 간사하고 연약한 동물도 없다. 누구는 봉사와 애국에 목숨을 바치고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누구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부류도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이 부국으로 가느냐와 망국으로 가느냐이다. 천지기운이 제 아무리 한민족의 손을 잡아주려 해도 국민들이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이를 외면한다면 나라의 운명은 후자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단한 예언도 아니며 이미 정해진 운명도 아니거니와 누가 들어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은 지식과 지혜의 겸비가 아니라 도리와 예의를 알고 이를 지키는 것이기에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이지 키보드나 키오스크나 AI와 친하다고 우월감을 가질 일은 아니다.

자고로 기계적 문명의 발전은 일시적인 편리함에 그치는 것이지 오히려 사람이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에 종속되어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알 수 없는 시대가 올까 두려운 것이다. 대안은 지금부터라도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미풍양속은 괜히 정해진 생활 속의 미사여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