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덕암칼럼]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2.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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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두 손으로 눈을 막아 하늘이 안 보인다고 하늘이 없는 것일까. 있었던 사실이 진실임에도 흔적을 지운다고 없어지는 과거가 될 수는 없다.

최근 극장가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의 봄이 24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이유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하거나 사실과 너무도 다르게 각색된 영화였다면 아마 실패로 끝났을 공산이 컸을 것이다. 또 최근 유행하는 사극 드라마 중에 고려 거란전쟁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거란족을 지금으로 치자면 러시아에 해당하는 것이고 명나라는 중국에 해당한다.

여진족은 러시아 서북쪽에 위치한 비교적 야만스러운 성향이 있다. 국력이 커지면서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집요하게 괴롭힌 침략 근성을 보인 바 있다. 어쨌거나 일본이 임진왜란으로 시작해 러·일전쟁의 발판으로 삼았던 시절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전범국가로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과정까지 모두 거슬러보면 대한민국 입장에서 결코 반가울 리 없는 나라다.

그러함에도 축구 경기할 때만 90분짜리 애국자가 되어 한·일전에 몰입해 기를 쓰고 응원하지만 막상 경기가 끝나면 일본산 담배, 자동차, 식품, 의류 등 일제 구매에 전혀 무감각해져 매출을 올려준다.

뿐인가. 불매 운동한다고 난리를 피워도 2023년 한해 대일 관광적자는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까마귀 근성인지 국가와 국민은 별개라는 현명한 판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사실 역사적 고증을 통해 한반도의 침략 기록을 보면 일본보다 중국과 러시아 방면에서 쥐락펴락한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심지어 서양에서도 침을 삼킨 조선이었으니 우매한 관료들은 배를 두들기고 백성들만 배를 곯았다. 조공 약속은 관료들과 임금이 살아남기 위해 체결했지만 내 나라 여자를 지키지 못해 겁탈당하고 객지로 공출하기 위한 갹출은 백성들의 몫이었다.

강대국이 약소국들에 못할 짓이 없는 것처럼 약소국이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 것이 지난 역사였다. 우리나라가 방어에 급급 하느라 지금까지 공격 한번 못한 것은 안 한 게 아니라 지리적 특성상 사면이 적국이라 못한 것이었다.

그나마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힘을 합쳐 막아낸 조명 연합군과 신라가 당나라와 힘을 합쳐 삼국을 통일한 나당 연합군이 전부였다. 결론적으로 일본보다는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더 많이 대한민국을 침략했다는 사실이다.

애도 시대 일본이 통일됐고 남은 무신들이 칼이 녹슬 때가 되어 조선이 타깃이 되었다는 역사는 이미 한반도가 도마 위의 생선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전범국가 일본. 약소국 백성들이 강제 노역으로 타국에서 생목숨을 잃었고 최근에도 배상 판결이 증명되었음에도 최근 그 흔적을 지우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으니 경제적 강대국의 아량이나 정치적 철학이 얼마나 졸렬하고 새가슴인지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미 선대에 저질러진 전쟁의 상처들을 후대들까지 우기며 굳이 발을 빼려고 애쓰는 것은 한때 세계 제패를 눈앞에 두었던 일본의 모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대국이라면 겸허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과 사과를 정중히 하는 것이 대국의 참모습이다.

국가가 그러하면 국민들도 진정한 이웃 나라가 될 텐데 하는 짓거리를 보면 저런 찌질한 사고를 하는 나라가 운이 좋아 한때 일본을 중심으로 서구열강을 몰아내자는 대동아 공영을 꿈꾸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사설이 긴 이유는 지난 1월 29일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설치되었던 조선인 추도비가 철거되었다는 점을 우리 국민이 기억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전제한 과거사들이다.

이번 철거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 일본 극우 정치인들이 다른 추도비도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비록 지자체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일본 정부가 굳이 말리지 않고 지켜본다는 점이 양국 간의 외교 참사로 번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 철거된 추도비는 일본 시민단체가 한반도와 일본 간 역사를 이해하고 양국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2004년 설치한 것인데 20년 만에 다시 철거한 것이다.

비석 앞면에는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한국어·일본어·영어로 적혔고 뒷면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적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반성하고 함께 공생하자는 결의가 담겨있었는데 철거된 데는 이러한 뜻도 함께 철거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군마현에서는 조선인 6천여 명이 동원돼 노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거 명분은 2012년 추도비 앞에서 열린 추도제에서 참가자가 강제 연행을 언급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설치·허가·연장을 거부했고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자체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확정 내리면서 시작됐다.

군마현 지사는 과거의 역사를 수정할 의도는 없다고 했다. 주일 한국대사나 한국대사관 관계자들도 침묵을 지켰고 그 많은 시민단체나 국회의원 그 누구도 입장문 발표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 지우기를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와 재일교포들이 항의하는 선에서 추도비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우수를 맞이하여 스산한 겨울비만 대지를 적시고 있다. 침묵하는 후손들을 보는 순국열사들과 강제 징용으로 유명을 달리한 조선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나씩 철거되는 추도비를 지금의 후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 위에 과거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물결에 불과할까.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