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앉으면 눕고 싶고
[덕암칼럼] 앉으면 눕고 싶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4.02.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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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다. 이른바 걷던 사람한테 말을 주니 마부를 붙여 달라는 것과 같다.

여기서 본능을 조절하는 이성이 강하면 다행이지만 정신력이 육체적 본능을 이긴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

이러한 본능을 자극하며 표를 구걸하는 것이 현재의 정치판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부지런만 하면 어떤 식이든 단칸방 집 한 채라도 사서 밥은 먹었다.

1980년대 들어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군부독재가 종식됐고 해외여행 자유화는 물론 자정이면 오도가도 못하던 통금도 해제됐다.

처음부터 대한민국의 밤거리가 불야성은 아니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순수했다. 과거처럼 막걸리에 고무신 돌린다고 찍어주던 시대는 아니었지만 후보자의 인물론에 힘이 실렸고 비교적 정직하고 민심이 표심에 적용되었던 시절이다.

1990년부터 자유는 방종을 불러왔고 이제 노력하며 잘살기 보다는 주식, 증권, 부동산, 가상화폐까지 등장해 한탕주의가 만연했다. 모두 다 실패하면 다행인데 어쩌다 한두 건은 대박이 터지니 누가 피땀 흘려 노력할 것인가.

당연히 로또 복권방은 불티나게 매출이 늘었고 정치권에서는 달콤한 사탕 작전이 시작됐다. 표가 될 만한 분야나 단체라면 뒷일은 제쳐놓고 온갖 공약을 남발하며 한 표를 구걸했다. 배고픈 사람들은 던져주는 고깃덩이에 침을 삼키며 당장의 허기를 채울 수 있기에 뒷일을 알면서도 손을 들어주었다.

실업수당부터 온갖 수당이 명분만 다르지 돈으로 표심을 얻었고 근로 시간은 물론 안전에 대한 문제점까지 현실적인 대안보다는 모두 돈으로 흔들었다. 사탕발림들이 주변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자 멀쩡하게 일하던 근로자들과 기타 단체들도 이제 하나둘씩 장갑과 장화를 벗었다.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은 주인을 잃고 사물함에 방치되면서 그 빈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워 나갔다. 누구의 잘못이며 누구의 책임일까. 만약 달콤한 사탕을 살 돈으로 더 노력하는 근로자에게 장려금으로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신성한 노동의 대가와 놀고 받는 돈이 대동소이하다면 누가 힘들게 일할까. 나만 잘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열심히 죽어라 일한 사람만 바보 되는 세상에 누가 땀을 흘릴까. 멀쩡히 일하던 사람조차 깨끗하고 편한 일자리 돈 많이 주고 온갖 복지정책이 잘 마련된 직장만 찾다 보니 대한민국의 1차 산업과 제조업은 물론 건설, 조선까지 모두 외국인으로 채워졌다.

사탕은 처음에는 정치인이 자신의 영달과 명예욕으로 만든 것이지만 알면서도 받아먹은 근로자들 또한 공범이다. 비단 노동계뿐만 아니라 여성단체의 표가 욕심나면 양성평등 정책과 여성 우대로 표를 구걸했고 멀쩡했던 주부와 가임여성도 자신만 출산의 고통을 안고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저출산이 시작됐다.

해당 단체가 불법이든 이기적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표만 된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탕을 뿌려댄 결과이다. 이제는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고 편익과 욕심만 채워진다면 오히려 유권자가 후보자들에게 사탕 제조를 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쯤 되면 통제가 불가능하다. 2023년 국내 대기업 조선사들이 총 8,60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뽑았다. 선발된 외국인 근로자들은 1970년대 한국인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당시 한국인들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근면·성실함의 상징이었다.

중장비도 변변찮은 시대에 삽과 곡괭이만 들면 언제 어디서든 건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불과 50년 전이었다. 이미 30년 전부터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던 대한민국 경제인들은 이제 게으름이라는 본능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이성을 지배해 무력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일 안 하고 노는 사람에게는 일 하면 돈을 더 준다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 놀고 있으면 적더라도 돈을 준다는 것은 놀고 싶은 본능을 부추겨 근로의욕 상실, 나태함의 만성적인 습관, 일해 봤자 혼자만 바보 된다는 사회 불신의 현주소다.

점차 잃어가는 것은 계좌의 잔고가 아니라 자아실현의 부재다. 대출할 때 약정했던 이자도 갚아준다고 하고 심지어 불법 대출이면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선심성 공약도 남발했다. 이러니 누가 돈을 빌려줄 것이며 고액의 이자라도 빌릴 데가 없는 서민들은 극단적 선택만 고려하게 된다.

물질문명의 발전은 편리한 것이지 행복과는 별개 문제다. 그래서인가 인구 80만 명도 안 되는 히말라야 고지의 나라 부탄이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하는 것만 봐도 행복은 문명의 발달순이 아니다.

필자는 이 나라가 안정되고 국민이 다리 뻗고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의 주인공이길 바란다. 염려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자면 지금이라도 국민 각자가 본능보다 이성이 강한 사람, 위·아래가 제대로 지켜지는 동방예의지국이 되길 바란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무형의 자산가치는 자동차 백만 대를 파는 무역흑자보다 더 중요하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가치가 별도로 존재하듯 우리나라는 대한민국만이 갖고 있는 색채가 분명해야 한다.

언제까지 외국의 물질문명에 휘둘려 혼을 놓고 몸만 사는 국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서서히 겨울한파도 물러가고 산천에 꽃망울들이 서서히 고개를 내미는 봄날이 다가온다.

겨우내 얼었던 양어장의 얼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형체도 찾아볼 수 없다. 수천 마리의 빙어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보며 배가 불룩한 토끼의 식성이 유난히 출산 티를 낸다. 그냥 두면 번식이 왕성한데 정부는 저출산이 되도록 이러저러한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돈으로 때우는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