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報勳月)로 정하였다
달(報勳月)로 정하였다
  • 이학근 kmaeil@
  • 승인 2007.06.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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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반국가적 노동투쟁 이념투쟁하다 죽은사람들을 그들 나름대로 열사의사라 자칭하고 반사회적 행사를 하던것을 보고 일제시대 독립운동 하던 분들의 행적을 보고 그의 후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면서 이번 보훈의달 현충일과 보훈의달 6월6일을 기하며 나라에서는 나라위해 진정으로 희생된 분들의 공적과 그의 후손들의 보람을 찾아 주고 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찾아서 정립해 주기를 바란다.
 6.25를 상기하자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6.25행사때 6.25기념 노래는 이제는 들어볼 수 없고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 정권이 남한을 공산화 점화통일 하겠다고 1950.6.25 새벽5시 3.8선 이북에서 소련 쓰타린의 지령 지원으로 배치 받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하여 불가 10일만에 서울까지 점령하고 임시수도 대전을 30일 만에 그리고 7월 말일에는 낙동강 방어선 8월 말일에는 대구, 마산, 부산을 제외하고 남한 전체를 점령하고 9.18 맥아더 미 태평양 사령관의 인천 상류작전으로 해병제 여단 장병들이 서울 로선발진격하여 9.18 수복 중앙청 옥상에 태극기를 꽂아놓고 반격하여 3.8선을 넘어 북진하고 10월 28일 평양을 점령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방문하고 12월30일에는 압록강 두만강 해산건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점령하여 통일이 눈앞에 까지 왔을때 1951.1.3 중공군 50만이 참전으로 인해 전술로 다시 밀로 내려와 서울이라서 점령 당하고 맥아더 장군이 만주폭격작전 개시를 앞두고 지금의 휴전선 백마고지에서 계속 쟁탈전이 남북간의 하루도 수십차례 반복되던 1953.7.13 휴전협정이 한국정부 이승만 대통령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대표 불참하에 북한군 책임자 남일 중공군 책임자 팽덕회 유엔군 책임자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 등이 현전선에서 휴전하며 평화회담으로 한국전을 종식시킨다는 것이 2000.6.15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대중 대통령간 남북불가침조약 박정희 대통령시 김일성과 맺어진 72.7.4 공동 성명 연장으로 이어진 것이 사실인데 386 운동권중 6.25전쟁이 미군이 일으킨 북침전쟁이란 자들도 있는 급진 남한실정은 심각한 남남갈등속에 2005.10.9 남북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달사국인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간에 이루어진 6자회담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하겠다는 사실을 북한은 경제원조쌀, 비료, 생필품 지원을 위협적으로 요구하고 우리정부는 울며 겨자먹기로 명분으로는 같은 민족 동포끼리 인도적 차원으로 지원해왔다.
이번 6월6일 현충일을 계기로 민족의 선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운동권 의사 열사 명칭운운 불식되고 국가민족 나라 위한 선열의 개념을 분명히 후손들에게 제시되어야 하고 6.25 전쟁의 의의와 장본인이 누구였고 어떻게 진행되였음을 교과서 적으로 정립제시 되어야 하며 6.15선언의 근본 뜻과 6자회담과의 관계 북핵 개발저지와 미사일 위협발사의 취지를 국민들에게 바르게 판단되게 하고, 안보 불안과 해결법이 남남갈등해소와 모든 분야에서 남남갈등 양극화를 없애고 국론 통일과 경제성장과 진정한 민주정치를 하여 희망있는 나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지도자들의 각성의 날로 국민들의 애국의 길로 인도하는 날로 현충일의 뜻을 모으자
이학근
이학근
kma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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