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운(時運)을 조절하는 지혜
시운(時運)을 조절하는 지혜
  • 박호양논설위원 kmaeil@
  • 승인 2007.06.2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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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곳에는 사리(事理)를 판단해야 할 조건이 수반되고 있다. 생활하는 동안에도 행동하며 실천하는 과업이 필수 되고 있다. 판단을 그르치면 성사하기가 어렵고 행동이 빗나가면 망나니로 전락한다.
서고 앉고 움직이고 쉬고 어떠한 변역(變易)에 있어서나 민감한 판단과 예리한 지혜로써 처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 오면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이 때에 따라 움직이고 때를 놓쳐서는 안됨과 같으며, 설 때는 서고앉을 때는 앉아야 한다. 만약 움직여야 할 때 쉬거나 쉬어야 할 때 움직이면 그것은 거꾸로 처신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자고로 흥(興)하고 성(盛)한자는 모두가 때를 잘 조절한 자요, 망(亡)하고 쇠(衰)한자는 때를 조절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친자 들이다. 사람에게는 평생을 사는 동안에는 시운(時運)이 따르고 있다. 그리하여 기복(起伏)과 소장(消長)을 반복하면서 성쇠의 운수가 교차되어 오기도 했다. 그것은 일월의 영측(盈?)과도 같고 四시의 소장성쇠와도 같은 이치이다.
이와 같은 변혁의 시기를 민감하게 파악하여 민첩한 지혜로 편승하고 타개(打開)해 나가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노력 끝에 왕운이 돌아왔다고 할 경우 교만하거나 방심하면서 안주(安住)해서는 아니 된다. 다음에 가야 할 길을 미리 내다보며 준비를 갖추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 오는 쇠운을 막을수도 있다.
완전에는 더 이상의 완전이 있을 수 없고 극한에서도 더 이상의 전진이 있을 수 없다. 상운(祥運)일수록 다만 그 연장을 꾀하고 바랄 뿐 더 이상의 욕심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화를 불러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은 얼마만큼 높은 자리에 있다 보면 교만과 오기가 생기기 쉽고 어떤 상태에서 만족을 느끼게 되면 해이해지고 나태해지기 쉽다. 교만이나 오기(傲氣), 해이 따위는 모두 금물이다. 이들을 경계하고 배척하면서 균형을 지키는 것이 현명한 방책이다. 행운이 찾아왔다고 교만하지 말며 악운이 왔다고 실망하지 말라는 것은 일관되고 있는 교훈이다.
앞으로 남은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침착하면서 악운에 좌절하지말고 불굴의 용기를 가지면서 침착하고 성실하면서 치밀하게 계산된 판단력과 내력을 길러야 한다. 다음에 올 행운을 개척해 나가기 위한 저력을 길러야 한다. 아무리 험난한 역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체념하지 말고  더욱 강인한 의지와 불퇴전의 용기를 발휘하는 곳에서만이  행운을 보다 빨리 잡을 수도 있다. 이것이 전화위복의 섭리다. 민감한 지혜와 민첩한 처신으로 굳건히 나갈 때  “악운도 행운으로” “역리를 순리”로 전환시킬 수 있다. 위와 같이 시운을 조절하면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조심 스럽게 지켜야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말을 조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한마디가 공들여 쌓아 놓은 탑이 산산조각 무너져 내리고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말실수로 인한 화근을 모면해야 한다. 화는 입으로부터 나오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간다는 화자구출 병자구입(禍自口出 病自口入)을 명심해야 한다. “풍도”라고 하는 사람은 당나라말기에 태어난 사람이다. 당나라가 망한 뒤에도 여러 왕조 밑에서 벼슬을 하며 어지럽고 위험한 시기에도 대우를 받아가면서 장수를 누리고 평온하게 살아온 것은 말을 아끼고 골라서  해온 까닭이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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