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졌거나 병들은 생태계
살아졌거나 병들은 생태계
  • 박호양 논설위원 kmaeil@
  • 승인 2007.06.2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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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지역에서 자라고있는 생물의 공동체. 이들의 생명유지의 근원이 되는 유기적(有機的) 환경은 서로 복잡한 상호 의존관계를 유지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체계에서 살고 있다.
이 같은 체계 환경에서 대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의 모습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다.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은 사라지지를 않고 사라져서는 아니 될 것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공허감과 함께 아쉬움이 들기도한다. 
 이맘때쯤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계절이다.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지저귀는 제비는 신록의 계절을 벗삼아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갖는 시간을 보내 온 제비였다. 매끄럽고 날렵한 제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지난날  사람들은 까마귀는 흉조(凶鳥)로 취급했고 까치는 길조(吉鳥)로 여겨왔다. 그러나 길조로 여겨 온 까치가 해조(害鳥)취급을 받기에 이른다.  과수농가를 급습하고 전류가 흐르는 고압 철탑에 집을 짖고 전류를 차단하는 사고를 유발케 하는 주범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활에 막중한 해를 끼치는 해조로 낙인 되고 있다. 하지만 제비는 낙조(樂鳥)라고 하겠다. 해충을 잡아먹고 사람의 생활에 피해를 주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칩(驚蟄)을 알리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설령 간혹 들리는 울음소리는 병들고 죽어 가는 맥빠진 울음소리다.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면서 생식해온 그 울음소리의 사라짐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도시 중심부에서 맑게 흐르고 있는 하천수도 거의 수질이 오염되여 버렸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에서 노닐 던 물고기를 살펴보면 몸체가 휘어져 있거나 오염되어 버렸고 그나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골짜기 골짜기에서  맑게 흐르는 돌틈사이를  뒤져보면 가재. 새우들이 노닐던 생태계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도 맑고 깨끗했던 천연수질(天然水質)은 인위적인 자연계의 파괴나 수질 오염화로 인한하여 계곡에서 서식헤온  생태계도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았다.
논뜰 밭뜰 시궁창 진흙탕을 헤쳐보면 그렇게도 많았던 지렁이의 흉물도 사라져 버렸다. 한마디로 모든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벽을 알려주는 닭울음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농촌에 가면 어린이 구경도 할 수 없고 어린애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단 말은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니다.
 황금 들녘에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던 메뚜기의 모습도 사라져 버렸다. 인간의 정서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온 그것들이 하나둘씩 그 모습이 사라져 가고있으니 어찌되어 가는 자연일까? 그렇게도 소박하고 순진했던 인간본연의 심성도 사라져가고 있다.  대자연이  병들어가고 악순환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심성도 악에 복받이는 순환의 과정에서 요동치고있는 것이다.
사라져 가서는 아니 될 것들이 사라져가고.  생겨서는 아니 되는 것들이 바라지도 않는데 이것들이 흉측한 용태를 자랑하면서 등장하고 활개를 치고 있다. 세상이 뒤바뀌어 가고있는 것이 아닐까? 생겨서도 아니 되고 원하지도 않은 것들이 판을 치고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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