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백지화하라!"...100일 넘게 천막 농성 중인 하남시민들
"신도시 백지화하라!"...100일 넘게 천막 농성 중인 하남시민들
  • 김경식 기자 kmaeil86@naver.com
  • 승인 2019.08.11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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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금을 줘도 싫다, 고향 땅에서 살고 싶을 뿐"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 강남 집값 때문에 빼앗길 순 없다"
"2주 만에 졸속 추진된 환경영향평가 받아들일 수 없다"

정부의 3기 신도시 정책 추진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하남 교산 신도시 백지화를 촉구하는 '하남교산지구 고향지키기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100일 넘도록 하남시청 앞 천막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하남교산지구 고향지키기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100일 넘도록 하남시청 앞에서 3기 신도시 철회를 촉구하는 천막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김경식 기자)
'하남교산지구 고향지키기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100일 넘도록 하남시청 앞에서 3기 신도시 철회를 촉구하는 천막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김경식 기자)
'하남교산지구 고향지키기 주민대책위원회'는 '보상을 더 받기 때문에 신도시를 반대한다'는 주변 시선에 대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하남교산지구 고향지키기 주민대책위원회'는 '보상을 더 받기 위해 신도시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는 주변 시선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왼쪽부터 김봉수 부위원장, 김철 위원장, 이영애 부위원장, 이언년 여성위원장, 강소향 실장, 장현성 정책자문담당. (사진=김경식 기자)

<경인매일>은 대책위의 천막 농성 100일 돌파를 맞아 김철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인터뷰 내내 3기 신도시가 명분도 없고 절차에도 문제가 있는 정책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억울할 뿐이다.

김철 위원장은 3기 신도시가 추진되면 지역민들은 평생 일궈온 땅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김철 위원장은 3기 신도시가 추진되면 지역민들은 평생 일궈온 땅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신도시를 비롯한 정부의 토지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보상 더 받으려고 저런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대책위는 이런 시선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수십 년간 그린벨트 때문에 손해 보며 살다가 이제 와서 헐값에 터전을 빼앗기게 생긴 지금의 상황이 억울한 뿐이지, 절대 돈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철 위원장은 "하남 교산지구는 50년 동안 그린벨트로 묶여있었다"며 "내 땅이 있어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화장실 하나 고쳐도 강제이행금을 내면서 그렇게 살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모여 살면서 한평생 농사 지어온 분들"이라며 "이 땅을 헐값으로 뺏기고 나면 리어카 끌고 박스 줍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언년 여성위원장은 "이곳에 시집 온지 57년 됐다"며 "아버님께 물려받은 땅에서 살았고, 나중엔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그린벨트라서 창고 하나 지은 것에 대해서도 벌금을 내야 했다"면서 "창고 임대료에서 벌금 내고 세금 내고 얼마 안 남은 그 돈으로 살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상의도 없이 3기 신도시를 추진한다면서 땅을 내놓으라고 하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암만 힘없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너무한 일"이라며 "벌금 문제 때문에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왔는데, 그것마저 뺏아간다고 하니 너무 분해서 피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영애 부위원장은 "평생 고생한 덕분이 이제는 좀 살만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재산을 전부 빼앗기게 생겼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이영애 부위원장은 "평생 고생한 덕분이 이제는 좀 살만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재산을 전부 빼앗기게 생겼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이영애 부위원장은 지난 5월 열린 하남 교산지구 전략환경평가 초안 설명회 반대 집회에서 삭발 시위를 한 인물이다. 그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 와 평생을 고생하며 살았는데, 그동안 고생한 것이 다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며 "오죽하면 삭발까지 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위원장은 "종갓집 맏며느리로 사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회상했다. 뙤약볕에도 농사 짓는 일꾼들 밥 해먹이고 참 나르며 온갖 고생 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고생한 덕분에 내 재산 생겼고 이제는 좀 살만해지겠다 생각했다"며 "그런데 이 재산을 전부 다 가져가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 관계자, 하남시장 등 온갖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누구 하나 사과하는 이들이 없고, 우리 이야기는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면서 "일은 일대로 저질러 놓고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다"고 비판했다.

억만금을 줘도 고향 땅과는 바꿀 수 없다.

이언년 여성위원장은 "정부가 상의도 없이 3기 신도시를 추진한다면서 땅을 내놓으라고 하니 너무 분해서 피눈물이 날 지경"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사진=김경식 기자)
이언년 여성위원장은 "정부가 상의도 없이 3기 신도시를 추진한다면서 땅을 내놓으라고 하니 너무 분해서 피눈물이 날 지경"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사진=김경식 기자)

대책위는 보상을 전혀 바라지 않으며,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농사 지으며 이웃들과 살고 싶을 뿐이라고 한다. 수십 년동안 쌓아온 이웃들과의 정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김철 위원장은 "교산동과 천현동은 함평 이씨와 인동 장씨 집성촌"이라며 "조상 대대로 함께 살며 서로 '형님 아우' 하면서 사소한 반찬 하나도 주고 받는 정겨운 문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3기 신도시가 추진되면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면서 "요즘은 아파트 위층에서 조금만 시끄러워도 칼부림이 나는 시대인데, 우리가 쌓아온 아름다운 정과 보이지 않는 유산들은 어떻게 보상해줄 거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억만금을 줘도 필요없다"며 "이대로 살게만 해달라"고 덧붙였다.

장현성 정책자문담당 또한 "3기 신도시가 추진되면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공동체가 다 깨지고 말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다같이 한 곳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살 수도 없고, 각자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며 "연로하신 분들에게 평생을 살아온 곳을 떠나 생소한 지역에 새로 정착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잃고 아파트로 들어간 분들 중에 시름시름 앓다고 돌아가시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며 우려를 표했다.

3기 신도시, 대체 누굴 위한 정책인가?

장현성 정책자문담당은 "3기 신도시가 추진되면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가 해체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장현성 정책자문담당은 "3기 신도시가 추진되면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가 해체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대책위는 정부의 3기 신도시 추진 배경에 대해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아무런 당위성도 없고, 원주민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김철 위원장은 "정부에선 주민 주거 정책의 일환으로 3기 신도시를 추진한다고 한다"며 "그런데, 오히려 주민 주거 정책이 가장 시급한 사람들은 그린벨트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그린벨트 때문에 열약한 삶을 살아온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 땅을 빼앗아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건, 단지 값이 싸기 때문"이라며 "싼 땅 이용해 땅 장사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강소향 실장은 "우리나라는 지금 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는 '인구 절벽' 상태인데, 굳이 아파트를 더 지을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중국은 인구가 13억 명인데도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지었다가 유령도시가 50개 넘게 있다"며 "일본도 벌써 10년 전부터 인구 절벽이 시작돼서 동경 외곽은 전부 유령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지금 아이들이 태어나지도 않는데, 환경을 파괴해가면서 개발을 강행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강 실장은 3기 신도시가 강남 집값 잡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남 집값이 오른 이유는 일자리와 교육 때문"이라며, "하남에 아파트 짓는다고 교육이 창출되고 일자리가 생기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코스트코와 스타필드 모두 서울에 법인이 있어 벌어들인 돈이 전부 서울로 가고, 하남시민들도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다"며 "신도시 개발로 하남을 자족도시화 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졸속 행정을 규탄한다.

강소향 실장은 "신도시는 한 번 추진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며 "수백 년을 내다보고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강소향 실장은 "신도시는 한 번 추진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며 "수백 년을 내다보고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정부는 3기 신도시 추진을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다. 이후 지난 5월 주민 설명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모든 지역 설명회가 무산된 바 있다. 대책위는 이 환경영향평가를 졸속으로 추진된 엉터리 조사라고 비판했다.

김철 위원장은 "환경영향평가 할 때 내가 위원이었다"면서 "7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자를 하나 가져오더니, 일주일 동안 다 읽어보고 조언을 해달라길래 바로 거부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환경영향평가라 하면 이 지역에서 봄에는 어떤 새가 울고 어떤 꽃이 피며, 노루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여름엔 무슨 일이 있는지, 계절 마다 교통과 환경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1년에 걸쳐 조사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정부에서는 문헌 조사만 해본 후 단 2주 만에 환경영향평가를 끝마쳤다고 한다"면서 "그 사람들은 저 산에 무슨 동물이 사는지, 무슨 유물이 있는지 하나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강소향 실장은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듯이, 신도시도 한 번 추진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며 "수백 년을 내다보고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5년 짜리 정부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신도시를 급하게 추진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1, 2기 신도시부터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순서"라고 꼬집었다.

바라는 건 단 하나, '3기 신도시 백지화'.

김봉수 부위원장은 "주민들을 희생해 LH 배만 불리는 3기 신도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김봉수 부위원장은 "주민들을 희생해 LH 배만 불리는 3기 신도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식 기자)

강소향 실장은 "국가 정책이 잘못된 건데, 우리를 탓하고 돈 더 받으려는 파렴치한 사람들로 몰아가는 걸 참을 수 없다"며 "원치 않는 정책이어도 정부가 한다면 무조건 따라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말 나라를 위한 의미있는 정책이라면 생각이라도 해볼텐데, 3기 신도시는 환경과 유물을 모두 파괴하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며 "내 재산을 바쳐가며 엉뚱한 짓을 하고 싶진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봉수 부위원장 또한 "3기 신도시가 원주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주민들을 희생하고, 땅 장사해서 LH 배만 불리는 정책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철 위원장은 "그린벨트는 도시의 허파와도 같다"면서 "그린벨트가 나쁜 공기도 걸러주고, 팔당에서 좋은 물도 공급해줘서 우리는 고생했지만 서울 사람들은 지금까지 편하게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정부에서 '그동안 그린벨트 때문에 고생하셨는데 이제는 모두 한 곳으로 이사 가시고, 저희는 여기를 개발해 아파트 짓겠습니다' 했으면 우리는 환영했을 것"이라며 "오히려 이제는 우리 땅까지 달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생을 손해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강남을 위해 희생하라고 한다"며 "보상도 필요없고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으니, 그냥 우리를 이대로 살게만 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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