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과거에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장난삼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곤 했다. 보통 지목되지 못한 상대방이 삐친 척 하기에 당사자인 아이입장에서는 누군가를 선택에서 배제해야하는 위험하고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는 정서적 학대에 해당된다.

아이가 조금 자라 원하는 성적이 안 나오거나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면 입으로 쓰읍 방울뱀 소리를 내며 폭력의 예비신호를 보내는 것 또한 겁박에 해당된다. 

그리고 반찬투정을 한다고 아이의 수저를 뺏거나, 일시적이지만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방에 가두는 행위는 감금, 협박 또는 간접적 폭력에 해당된다.

이러한 환경에 익숙해지면 당장은 부모 말을 듣겠지만 정작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원인은 배제한 채 결과만 바라고 임의로 정하는 부모의 일방적인 월권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육체적 성장에 미치지 못한 정신적 성숙이 빗나간 10대의 반항으로 돌출되는 것이다.

부모 자신이 배우지 못했거나 어릴 적 당한 폭력을 대물림하는 경우도 있고 또 때로는 내 자식만큼은 자신처럼 키우지 않겠다는 반대급부적 대리만족의 대상물로 전락시키는 경우도 많다. 

자식은 애완용 인형이나 부모의 목적대로 키워지는 가축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의 인격체다.

임신과 출산을 거쳐 인체의 신비 속에 성스럽게 태어난 하나의 생명체이나 어느 정도 성장할 때 까지 부모라는 존재로부터 보호받고 양육되어야 할 권리를 가진 인간이다.

탯줄을 달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미의 젖을 먹고 스스로 배변처리를 하거나 걸음마를 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보호자의 판단이나 보살핌에 의존해야하는 시절, 아이에게 가해지는 모든 위해요소들이 아이에게는 평생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동에 대한 배려는 누구랄 것 없이 오로지 부모의 책임이며 당연한 의무다. 과거처럼 7남매 9남매 낳는 출산은 없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또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는 구호가 엊그제 일이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구호도 있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빚은 참 비극이었다.

그래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낙태아가 되어버린 숱한 여아들의 운명은 산모와 산부인과 의사만이 아는 비밀이다. 다행히 태어나도 인성과 보육환경이 우수한 가운데 자랄 수 있는 아동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아이들의 행복은 누구도 지켜 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아동학대의 주요 요인에는 부모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어릴 때 학대 받은 부모가 이를 대물림 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감정조절이 안 될 때 비정상적인 분풀이로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부모의 불안장애, 우울증 기타 정신질환을 방어능력이 없는 아동들을 향해 푸는 것이며 아동 스스로도 기형아, 미숙아, 만성질환, 신체적 정신적 환경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고집이나 자신감 결여, 주변인에 대한 경계, 적대적 행위, 폭력적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아동은 하나의 인격체이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따라서 신체학대, 정서학대 겁박, 언어적 모욕, 정서적 위협, 감금은 고스란히 아동에게 상처가 된다. 과거에 소꿉놀이를 한다면 엄마 아빠역할을 맡아 놀던 아이들이 잠잘 때는 서로 껴안고 자는 모습을 연출한다. 간밤에 부모의 눈치 없는 부부관계를 보고 학습한 아이들의 흉내내기였다.

이 밖에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아동에게 먹을 것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고 방임하거나 장기간 방치하여 영양실조에 걸리게 두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하고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환경 속에 방치하고 식사를 공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생사람 굶겨 죽인 셈이다. 과거에는 폭력이 학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능하게 만드는 것이 학대다.

아이의 자질과 특징을 살피지 않고 오로지 좋은 대학이라는 정해진 목표로 12년간 몰아가는 현 교육제도의 허상에 스스로 가진 우수한 DNA의 소질을 무시하고 과열경쟁 대열에 몰아넣는 것,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학대다.

과잉보호로 부모가 원하는 자식으로 키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내 자식을 아무리 잘 키워도 학교 다닐 때 인성이 나쁜 친구를 만난다거나 모든 게 부족한 결혼상대를 만난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날 때부터 늙은이는 없다. 반듯한 아동이나 어린이가 교육을 더하면 긍정적이고 밝은 청소년이 되는 것이며 그런 청소년이 안정되고 열정적인 환경 속에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아동들이 제대로 된 환경 속에 자라고 있을까. 7세 8세가 되어도 자신의 배변 처리조차 교사가 해주어야 하는 현실, 엄마의 젖보다 소젖을 먹고 자라며 구린내가 난다고 종이기저귀도 겨우 갈아주는 가정, 산모의 통증을 덜기 위한 제왕절개, 물론 모두가 아니라 일부지만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 자라는 아이들이 과거에는 엄마의 포대기에 싸여 심장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다면 지금은 멀찌감치 유모차에 실려 스스로의 견해로 세상을 판단하는 성장이 대세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인구수를 늘리기 이전에 적은 아이라도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은 날 때부터 타고난 천성이 있다. 후천적 환경이나 자신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바꾸거나 개선할 수 도 있지만 천성이 교활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나이가 들어도 고쳐지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 안 된 자식은 낳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것이며 그렇기에 출산 인구 숫자에 연연할게 아니라 숫자는 적더라도 됨됨이가 반듯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아동학대는 그 어떤 범죄보다 엄중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과거처럼 가정교육이란 명분으로 분노의 감정풀이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고 너무 오냐 하며 키워서 인성교육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좋지 못한 교육이다. 11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맞이하여 아동들의 현주소를 모두가 공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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