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꿀 먹은 벙어리라는 속담이 있다. 과거 조선시대 시어머니들의 매서운 시집살이를 두고 친정 어머니가 전한 말 중 귀머거리 3년 눈, 뜬 장님 3년, 벙어리 3년 지날 때까지 참으라고 했던 말이 있었다. 필자는 이를 인용했다가 장애인 편견에 대한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했다고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장애인들의 불편함과 비장애인들과의 차별금지를 주장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자와 명태는 삼일에 한 번씩 패야 부드러워진다는 속담을 어필해도 여성단체로부터 고소당해야할까. 그랬다. 과거에는 이런 무식한 가정폭력이 난무했고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심했기에 비교하는 비속어들이 오랜 시간 전해져 왔다.

격언은 사용해도 되고 고쳐져야 할 속담은 법적 제재를 받는다면 속담은 누가 어떤 시각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범죄가 될 수 있으므로 국어사전에도 없애야 맞는 것이다. 

협박성 문자나 구애를 하거나 따라가도 스토킹이란 단어가 적용되며 과다 노출에 대해 적정시간 이상 쳐다봐서 수치심을 느끼면 범죄가 된다. 오늘의 주제에 대한 방어적 해설이 전제로 되어야 오해의 소지가 없을 것으로 사료되어 서론을 깔았다.

꿀 먹은 벙어리라는 단어는 백과사전이나 나무위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한국 속담이다. 그 뜻을 찾아보면 마음속에 든 생각을 말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그 유래 또한 누가 꿀을 훔쳐 먹었느냐고 야단치는 서당의 훈장님한테 거짓말로 안 먹었다고 할 수도 없고 자백하기에는 너무 무서워 입을 꾹 다문 학동에게 붙여진 수식어다.

반면 인도에서 전해져온 유래를 보면 시인 까비르가 진리를 달콤한 꿀과 비교하여 꿀을 먹은 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꿀이란 경제적, 권리적, 이익이나 권력을 통한 간접적 수익, 제 3자를 통한 이익의 세탁 등 다양한 수혜를 통틀어 말한다.

먹은 게 있으면 말을 못한다는 논리는 털도 안 뽑고 먹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다. 공무원과 업자가 짜고 이익을 챙겼다고 가정했을 때 적정하게 나눠먹으면 탈이 없지만 어느 한쪽이 과도한 욕심을 내거나 누군가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를 얹는다면 말이 생기고 탈이 난다.

그래서 나온 말이 공직제보다. 언론사의 팩스에도 걸핏하면 올라오는 제보는 내부비리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이 전해오는 내용이므로 상당히 사실적 가치가 있다. 또 옛날 말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도 있다.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돈, 조직, 누군가의 후보를 제치기 위해 전략을 짜지 않고는 달수 없는 금뱃지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낙선 고배를 뒤로하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의사가 암 수술을 하려니 복부를 개복해야하고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처럼 살벌한 정치판이나 민생경제가 바닥을 치는 행정의 부실한 경영에도 아무 말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통일교 한학자 교주가 구속되니 종교계가 입을 다물고 중대재해법으로 대형 건설사를 조지니 인사사고만 나면 너도나도 전국의 공사현장을 중단시키고 만다.

야당도 권성동 의원이 구속되니 너도나도 눈치만 보고 나설 사람이 없고 어쩌다 장동혁 대표가 포효를 질러도 누구하나 삭발하거나 그 흔한 단식 하는 꼴을 본적이 없다. 일부 유튜버들이 입바른 소리를 하지만 국민들은 관심이 없고 내란 가담혐의가 있는 공직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개인 휴대폰을 제출하라니 나서는 공무원이 없다.

이를 거절하거나 이행하지 않으면 파면까지 할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전국공무원노조가 걸핏하면 투쟁을 연발하지만 침묵이다. 1991년 2월 제작비 2,000만 달러를 투자해 만든 영화 양들의 침묵을 보면 범죄 스릴러 영화내용이 전개된다.

비교하자면 양들이 모여 있는 축사에 몇 일에 한 번씩 늑대가 나타나 양들의 무리 중 한 마리를 물고 간다. 모두가 합쳐서 울어대면 주인이 나와 늑대를 물리칠 수 있는데 너도나도 혹여 늑대에게 잡아먹힐까 두려워 침묵하니 늑대 입장에서는 이만한 식량창고가 없는 셈이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안 먹히면 그만이라는 이기심과 혹여 울어댔다가 먹힐수 있다는 공포감이 결국 전부 먹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꿀 먹고 입을 다문 학동이나 울지 않았다가 먹히는 양들이나 다를 바 무엇일까. 

지금 대한민국의 망국에 대한 주인공은 현 정부지만 더 치명적인 악재는 언론이고 방관의 주인공은 국민이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펜은 꺾여야 한다. 노조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어용노조이듯 차라리 없는 것이라면 없다고나 하지 있어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자리만 꿰차고 앉아 말하지 않는다면 그 언론은 무노조보다 못한 것이다. 

이제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누가 나설까. 누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나설까.

그렇게 밝고 맑고 백지장처럼 희고 순수한 사람이 과연 정치판에서 당선될 수 있을 것이며 당선된다고 차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선거로 인한 파장이 더욱 심각한 2025년이다. 2026년이 이제 40일 남짓 남았다. 언론, 종교, NGO, 재야 인사 등 누구하나 늑대가 나타났다고 울어대는 양은 없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세월호 납골당을 저지하려다 숱한 모욕과 인신공격, 권력적 봉쇄 형 줄 소송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었기에 말을 하지 못한다. 다만 염려할 뿐이고 말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만 말하게 됐다. 다만 바랄게 있다면 현 정부가 권력을 위한 정치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칠 것을 기대하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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