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필리핀, 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우기와 건기를 최근에는 대한민국서도 느낄 수 있게 됐다.
통상 적도에 가까울수록 뚜렷하게 나타나는 아열대지역의 우기는 게릴라성 소나기가 쏟아지다가도 다시 말짱하게 갠날씨가 반복되는 기후다. 한국의 경우 8월이면 장마가 지나가고 그 다음 9월부터는 가을 햇살이 따가운 덕분에 과일은 단맛을 낼 수 있고 잎사귀는 점차 노란색으로 변해 10월 말 경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기온이라는 건 100년 주기로 1도만 오르내려도 그 폭이 대단하다 할 수 있는데 100년에 변할 일이 10년으로, 10년에 변할 일이 1년 주기로 단축되고 있다. 최근 동해안에서 사라져버린 명태나 오징어도 그렇거니와 남부지방에서나 자랄 작물들이 중부지방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다는 농부들의 구전을 통해 우리나라의 기후변화를 알 수 있다.
그래서인가 2025년 9월과 10월은 내내 비가 내렸다. 기상청의 예보는 진작에 적중률의 범위를 벗어났다. 한 두번 틀리면 설마 하겠지만 연속적으로 틀리면 국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오보청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운 것이다.
장마도 아닌 시기에 내린 집중호우가 땅이 마를 날도 없이 간헐적으로 계속되면서 토목공사를 앞둔 건설현장이나 가을걷이를 기다리던 농부들의 애타는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마트에 가면 언제든 손쉽게 농축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일반 소비자들이야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산과 바다, 들판이나 시설작물 지역에서 직접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9월과 10월의 우기로 인해 과일은 단맛이 덜하고 추수하려니 작물들이 물러져 신선한 열매를 거둘 수 없었으며 바다로 조업 나가는 어부들 또한 불규칙한 기상상태로 인해 몇 번인가 출항을 망설인 가을이었다.
춘하추동의 변화에 원칙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수 천 년 반복하던 기온이 불과 십년도 안 되는 사이에 변화를 나타낸다는 건 그냥 넘기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기후변화가 한국의 공업화나 탄소 배출만으로 생기는 현상은 아니다.
이미 중국의 중공업화로 인한 대기오염과 호주 산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타 화석연료 사용의 남발로 인해 지구온난화는 위험선을 넘긴지 오래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앞으로는 모두가 위기라고 떠들지만 뒤로는 마땅히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자동차를 안 탈수도 없거니와 인간의 문명추구는 그 욕심이 끝이 없다.
필자는 최근 기존에 협력해 오던 기후변화 네트워크 경주 챌린지 행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경주 호수를 도보로 거닐며 걸은 만큼 탄소 줄이기로 점수를 획득하는 캠페인인데 작은 노력이 모여 큰 결실을 이룬다는 이론적 추정이다.
물론 걸으면서도 과연 나의 걷기가 탄소 줄이기에 얼마나 어떤 형태로 도움이 될까라는 의구심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후변화의 속도가 한해 마다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필자는 강원도 태백의 산 높고 물 맑은 지역에서 자랐기에 자연의 품안에서 많은 걸 보고 느꼈다.
그렇기에 푸르던 잎사귀가 가을을 맞이하여 노랗고 붉은 단풍이 된다는 걸 당연시 여겼다. 그래서 만산홍엽에 불이 붙었다는 노래가사도 있지 않았던가. 10월 31일. 시월의 마지막 날 노래를 부를 즈음이면 대부분의 나무들이 붉은 잎으로 장식하여 시가 절로 나오는 만추의 계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풍을 지금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햇살이 하루 종일 비추는 곳이면 일부 지역에서는 형형색색의 단풍을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숲은 푸르름 그대로임에도 기온은 초겨울 날씨를 기록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나 순리란 임의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제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나뭇잎을 붉은 색으로 물들일 수는 없는 것이고 이런 변화를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을이 사라진데 대한 자연의 경고임을 알아야 한다. 적도에서 남극과 북극으로 경도와 위도가 정해짐은 지구의 기본이었다.
기본에서 인간의 욕심으로 달라진 게 변화였는데 이제 그 변화를 인류가 피부로 느낄 정도라면 전 세계 곳곳의 고지대 암벽마다 층층이 그려져 있는 침식현상의 흔적은 결코 그냥 넘길 장면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문제를 새삼 거론하는 건 대안을 마련하자는 뜻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 너무 막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비가 온다고 우산을 만들었듯, 기온이 달라진다면 상승한 만큼 그에 대한 적응을 하든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적어도 급변에 대한 준비시간은 있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려하지 말고 될 만한 일을 추진하는 되는 것이다.
해안가에는 만수가 넘치지 않도록 차벽을 쌓고 열대기후에 맞는 작물을 심어서 농업기반을 달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화석연료대신 전기차나 수소로 움직이는 엔진이 점차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제 해양 오염도 관리단속을 강화하여 보다 나은 저탄소 발생 대안을 세우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친환경 소재로 에너지를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인류의 숙제다. 다만 태양광처럼 수명이 짧고 재생 안 되는 패널로 인해 2차 오염이 가중된다면 이런 장기적 측면에서 고려해볼 일이다. 지구온난화가 경제와 환경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글로벌전쟁에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중국산 태양광이 문제가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효율성이 중요하다. 어느 나라 것이면 어떠랴 우리나라 국익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 정책을 타넘어서는 안 된다. 문득 자동차가 다니는 대한민국의 하늘보다 가마가 다니는 조선의 하늘이 더 맑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