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약 5년 전인 2020년, 경기도 안산시 중앙동의 야경은 서울 4대문을 벗어나면 가장 화려한 곳 중 하나였다. 크기나 색상, 위치까지 통제되지 않은 간판들이 반짝였고 눈 둘 곳 없이 휘청거리는 취객들의 비틀거림은 또 하나의 진풍경이었다.

거리마다 짙은 화장의 여성들이 삼삼오오 떼 지어 몰려 다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밤, 술집이 밀집한 골목은 식당, 오락실, 노래방, 모텔 등 밤에 어울릴 만한 업종들이 공생의 나날을 이어갔다.

과거 구로공단에서 몰려온 반월공단, 시화공단 덕분에 수 만개의 공장들이 연일 굴뚝마다 백연을, 하수구마다 폐수를 쏟아내며 수십 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했다. 

지자체에게도 반월, 시화공단은 막대한 세수확보의 기반이었고 소비도시라는 닉네임이 어울리듯 회식이나 접대문화가 발달해온 안산은 거대한 불야성 그 자체였다. 

식당에서 1차, 호프집에서 2차, 노래방에서 3차를 보내고도 모자라면 나이트 클럽에서 4차, 그리고 포장마차에서 5차로 끝을 보는 것만이 의리와 우정과 비즈니스의 결정타를 마무리하는 수순이었다.

그런 유흥업에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도우미다. 20개도 넘는 무허가 보도방에서 공급하는 접대 여성들은 술집에 고정으로 정착하여 일하는 여종업원을 제외하고도 500명이 넘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여성들은 각기 다른 사연이 있었다. 골목에는 삐끼가 호객하여 바가지를 씌우는 일도 흔했고 대충 짚어 봐도 관련종사자들의 직종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식당은 식자재 납품업체부터 주방기구, 관련 수리, 주방장, 홀 써빙, 호프집 아르바이트생과 주류업체, 안주배달업체, 나이트클럽의 주방, 웨이터, 음향기기, 무대가수, 조명, 심지어 포장마차로 생계를 꾸려가던 노점상, 비가오나 눈이 오나 일기와 상관없이 펄럭이는 포장을 치고 먹고 살기 위해 견디던 사람들. 그리고 호황을 누렸던 대리운전기사들까지.

이제 절반 그 이상의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설령 남아있더라도 겨우 유지할 정도 밖에 안되는 삶을 꾸리고 있다. 

대형뷔페나 식당도 마찬가지다. 결혼식, 돌잔치, 칠순, 팔순, 연말이면 송년회, 각종 모임들의 회장 이취임식까지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의 대형뷔페는 늘 고객들의 예약으로 만석이었다.

적어도 2020년에는 그랬다. 필자는 위의 업종 중 적어도 2가지에서 3년에 달하는 운영경험을 가졌다. 대형술집도, 웨딩뷔페도 운영해보며 일장일단의 면모를 체험하는 과정에 어떤 진실이 감춰져있는지 또 어떤 노하우로 버틸 수 있는지도 겪어보았다. 

그리고 닥쳐온 코로나 펜데믹. 질병의 창궐은 단순히 육체적 건강만 해치고 가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놀고, 젊은 청춘들의 뜨거운 열정을 해소해줄 모텔사업에까지 죄다 삭풍이 불었다. 굳이 회식하지 않아도 회사경영에 문제가 없다는 것과, 같이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지 않아도 우정은 유지된다는 사실, 그 시간, 그 돈이면 각자 자신의 취미나 특기를 살려 보다 나은 삶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실리를 깨닫게 됐다.

문화공연도, 스포츠 경기도 무관중에 길들여 지다보니 코로나가 끝나도 달라진 문화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제 혼자 마시고 먹는 술과 밥이 익숙해지는 문화, 회식을 요구하면 꼰대 소리를 듣는 문화,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면 안 되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고 너무나 밝아진 정보의 홍수 속에 원가공개는 물론 무한경쟁으로 대충 먹고 살던 유통과정의 자영업자들은 설자리가 좁아졌다. 이대로라면 아예 사라진다.

심지어 AI손길이 닿지 않을 줄 알았던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위기를 겪으며 미용사, 과일가게 등 동네상권조차 유튜브가 장사밑천을 알려준다. 이제 소비자 가격내고 먹고 사고 하던 시절은 지났다. 대형마트 하나가 생기면 동네 슈퍼 50개가 문을 닫았고 대형마트조차 홈쇼핑에 밀리고 쿠팡에 밀려 하나 둘씩 문을 닫는다.

국내도 모자라 해외직구까지 소비자의 선택에 포함되자 단순한 문화의 변화가 아니라 무한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그나마 남은 일자리마저 정부의 근로자 우대정책으로 로봇에게 빼앗기게 생겼다. 식당 서빙이나 주방장, 주문데스크까지 죄다 키오스크나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편리한 세상이 도래했다.

소비자 또한 그런 문화에 적응하여 누구하나 불평을 하지 않는다. 과거 양복점이나 구둣방은 수작업인 만큼 가격도 높았고 한 번씩 맞춰 입으려면 가봉을 거쳐야 했다. 이제 각종 브랜드 기성복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되니 기능공들의 실직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숙박업도 한때 불황을 몰랐다.

정보의 홍수는 숙박업에도 범람했다. 광고에 기댔다가 광고에 휘둘리고 결국 광고주 좋은 일 시켜주는 노예로 전락했다. 최고치를 찍었던 숙박업계의 매출은 이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필자는 이 분야 또한 3년 이상을 경영하고 지금도 운영하고 있지만 달라진 숙박문화의 경영진이나 소비층이나 이제 선택의 폭은 무한경쟁을 향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가 급락하고 있다. 건설현장도, 내수시장도, 1차 산업인 농업어업, 축산업만이 겨우 유지되고 있는데 이 같은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려면 유통의 주인공인 물류, 물류의 주류인 화물이 잘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대기업의 물류진출과 자체 운송시스템, 배달 앱의 성행으로 점차 시동을 끄는 화물차가 늘어난다.

모든 게 편리한 세상, 모든 게 빠르고 모든 원가가 공개되는 세상. 누가 살아남을까. 적절한 마진에는 원가와 임대료, 인건비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편의점이나 주유소는 물론 모든 업종이 무인점포, 셀프주유소로 바뀌어간다. 건설현장이나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직종은 죄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차지하고 남은 일자리는 없다.

이제 어쩔 것인가. 이대로 정부가 주는 수당에 길들여져 물고기 잡는 법을 잊고 살 것인가. 몇 일을 굶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생존법을 익힐 것인가.

무릇 어떤 일이든 자신만이 지난 고유의 장점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어야 산다. 그럴 공백이나 여유는 찾기 나름이다. 절망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다만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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