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약 50년 전의 일이다. 한 동네 한 집정도 밖에 없던 약 50년 전의 텔레비전은 크기도 식당 탁자만 했고 브라운관을 보호하기 위해 티크목재로 만든 슬라이드 문을 양쪽으로 열어야 볼 수 있는 구조였다.

흑백화면에 노이즈가 끼어 잘 보이지 않거나 화면이 아래위로 오르내리면 지붕이나 담벼락에 설치된 안테나를 빙빙 돌려가며 주파수를 맞춰야 그나마 화면이 정지되거나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세월이 몇 년 더 지나 비교적 안정된 화면을 볼 수 있을 즈음 과자, 음료, 아이스크림, 각종 양념류 광고가 서민들의 눈길을 끌었고 간혹 화장품이나 세제류 광고가 뒤를 이었다.

프로그램 또한 수사반장, 장학퀴즈, 타잔 등 다양해졌고 만화영화로는 로보스 태권브이, 마징가 Z, 해치의 모험, 마린보이나 은하철도 999가 동네아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 광고가 등장했고 화면은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었다. 출연하던 배우들도 색조화장을 고쳐야 했고 옷이나 조명도 칼라시대를 맞이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채널은 불과 몇 개 되지 않았으니 시청자들의 선택은 한정되어 있었다.

안방극장이라 불릴 만큼 위세가 대단했기에 연속극이나 수입된 다큐멘터리는 순진한 국민들의 정서를 휘어잡을 수 있었다.

달리 다른 매체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그 시절, 선데이 서울이나 주간잡지만이 버스 정류장 가판대를 장식하고 너도 나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지라 1970년대만 해도 텔레비전은 스승이요 친구이자 국민정서를 안내하는 가이드였다. 별다른 사치도 부릴 수 없었고 첫 시작부터 끝까지 애국가는 기본이었다.

나의 조국이나 전우 등 국가관을 심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어쩌다 젊은 청춘들이 열정을 발산하던 강변가요제는 지금의 대형가수들을 배출하는 등용문이기도 했다. 더 시간이 지나 배가 불룩하던 브라운관은 동종업계의 경쟁으로 LCD화면으로 점점 얇아져가며 전 세계 텔레비전 시장을 석권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신문지면으로 여론을 이끌어가던 매체들이 너도나도 종편을 병행하면서 이제 읽던 시대에서 보고 즐기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대로 발전했다.

하지만 휴대폰의 등장과 함께 시청자들의 관심은 점차 시청률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이를 개선할 근본적인 대책이나 가치위주의 프로그램들이 자체 생산되기보다 수입에 의존하면서 흥미위주의 편한 길을 선택했다.

물론 모든 매체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부 채널을 보면 일본의 NHK 나 아리랑 TV, 미국이나 중국의 편성프로그램 등 외국에서도 볼 수 있었던 내용들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만 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독점에서 안주하는 여유가 시대변화의 폭에 발을 못 맞추며 골든타임을 놓쳤다.

잘만 했으면 그리 저속하거나 흥미위주 프로그램의 편성 말고도 얼마든지 국민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텐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보물단지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미 정보의 홍수 속에 너무나 똑똑해진 국민들이 급변하는 SNS, AI로 관심을 이동하면서 TV는 안방극장이라는 위치를 양보해야 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쏟아지는 온갖 정보 속에 시청률 유지는 고사하고 어쩌다 한일축구 경기나 벌어져야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국민들은 TV에서 보도하는 뉴스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 시대에 도래했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시청률이다.

그러니 이혼을 부추기는 저속한 드라마, 법적으로는 방송심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지만 아슬아슬하게 내용을 비껴가는 편법도 난무한다. 특정 채널은 정치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며 편파적인 내용으로 국민들의 판단에 오류를 불러왔고 한번 무너진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까지 치달았다.

시대가 변하기 전에 보다 나은 가치 창출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시청자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TV에 기대고 내용에 감동하며 올바른 여론형성을 기대하는 등대역할을 했어야 했다. 

지난 11월 22일은 텔레비전의 날이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종편들이 속속 내놓은 미스, 미스터트롯이 얼마나 인기를 끌었던가.

외출, 모임, 이동조차 불편했던 당시에 답답한 국민들의 숨통을 시원하게 터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대형가수, 일류가수, 일반 가수, 삼류가수, 무명가수 등 피라미드처럼 계층 간 구분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특별한 영웅을 제외하고 나머지 가요계의 근간을 이루던 발판은 무한 경쟁의 도전에 일류만 빼고 나머지는 설자리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가 된 가수들의 등장은 기존에 어느 정도 인지도를 자랑하던 가수들의 밥그릇을 하루아침에 빼앗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단 오락이나 가요 말고도 정치, 경제, 특히 인기 드라마를 방영하는 매체들은 지금 당장의 시청률보다 항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두고 봐도 가치가 있는 프로, 수입된 영화를 재탕 삼탕 해서 상영하던 과거의 구태를 벗고 그 많은 인력, 장비,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국민들의 길잡이가 되고 스마트폰을 놓고서라도 믿고 볼 수 있는 뉴스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서 더 가면 그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시청률이 다시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텔레비전이란 사실 대단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정보의 사령탑이다. 그 위치에 걸맞게 국민들의 믿음을 얻어 기능과 역할에 충실해야 훗날 후손들에게도 가장 귀한 매체, 정보의 보물 상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도 신뢰받을 수 있고 외신들이 볼 때도 가히 부러워할 방송이 될 것이다.

잔소리에 반박할게 아니라 시정할 건 시정하고 염려를 받아들인다면 발전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기에 남기는 말이다. 신문이 스스로의 가치를 잃었듯이 방송 또한 마찬가지다. 뭐든지 있을 때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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